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마스터

정계와 재계의 비리를 다룬 또 한편의 범죄 액션 영화가 개봉한다. 자연인으로서의 어려움을 딛고 '내부자들'을 통해 역시 '연기의 신'이라 불리며 모든 억측들을 잠재웠던 이병헌의 차기작이라는 기대감이 영화를 주목하게 하는 주요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다 기본적인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는 강동원, 떠오르는 스타로서 굵직한 배역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젊은 배우 김우빈 등 남배우 3인의 조합은 남자들의 이야기인 범죄 액션 영화에서 최선의 선택이다.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4), '내부자들'(2015), '아수라'(2016) 등을 거치면서, 정치계와 경제계 권력자들의 비리를 건드리지만, 문제의 근원을 시원스럽게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정면에서 겨냥하는 범죄 액션 영화가 정점에 도달해 있다는 느낌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범죄 영화를 모방해 보았지만, 어설픈 이야기 전개, 캐릭터의 평면성, 액션 장면에서 한계를 보이곤 했던 한국 범죄 영화가 이제는 할리우드를 뛰어넘는 장르적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 캐릭터는 다채로운 반면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주변으로 밀려나며 브로맨스 액션으로만 승부를 건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곤 하지만, 범죄 액션 영화는 헬조선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는 한국 권력층 내부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현실반영형의 통쾌한 장르이다.

또한 건국 이래 최대 정치 게이트로 한국인 모두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이 영화에 거는 기대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인해 뉴스 프로그램이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이때, '마스터'는 어쩌면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베테랑'의 통쾌함과 '내부자들'의 날카로움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기대할 것이다.

'마스터'를 연출한 이는 경찰 내 특수조직인 '감시반'이라는 낯선 소재를 세련된 연출로 그려내어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했던 '감시자들'(2013)의 조의석 감독이다. 전작에서 정우성을 악역으로 기용하여 쫓고 쫓기는 경찰의 추격전을 긴박감 있게 연출했던 그는 사상 최대 경제사범인 조희팔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현실감 넘치는 큰 스케일의 범죄 영화를 완성하였다.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화려한 언변, 사람을 현혹하는 재능, 정관계를 넘나드는 인맥으로 수만 명 회원들에게 사기를 치며 승승장구해 온 원네트워크 진 회장(이병헌)을 추적해왔다. 김재명은 진 회장의 최측근인 전산실장 박장군(김우빈)을 포섭하여 압박한다. 재명은 진 회장은 물론 그의 뒤에 숨은 권력자까지 모조리 잡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가지만, 장군은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돈을 챙기고 경찰의 압박에서도 벗어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진 회장은 간부 중에 배신자가 있음을 눈치 채고, 새 계획을 가동한다.

범죄 영화는 대개 3인의 주요 인물로 구성된다. 범죄자와 경찰, 그리고 희생자. 세 인물 간에 쫓고 쫓기는 위치가 뒤바뀌는 가운데 엎치락뒤치락 반전이 이어지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캐릭터들의 예상을 뒤엎는 행위로 인해 플롯 상의 미스터리가 밝혀지는 부분에서 관객은 환호하거나 혹은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범죄 영화의 경우 절대권력이라 여겨지는 정치권력의 비리가 드러나거나 은폐되는 서사 안에서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마스터'에서는 경찰과 범죄자, 그리고 둘 사이를 오가는 범죄자 측근 등 3인의 롤러코스터 같은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이 영화의 키워드이다. 조희팔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 사건이 반영된 인물과 스토리는 기시감을 드높이며 영화를 더욱 현실적으로 밀착시킨다.

그러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뻔뻔하다. 주연배우 3인의 외형은 멋지지만, 그들이 표현하는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고답적이며, 반전은 쉽게 예측이 되어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액션과 카레이싱의 화려함은 있지만, 그 이면에 도대체 답이 있을까 싶은 헬조선의 복잡하고 비참한 현실 묘사는 실종되어 버렸다. 아름다운 배우들의 브로맨스에 기대어 보려는 얄팍한 계산은 범죄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한풀 꺾이게 만들어버린다.

장르 영화의 법칙이란 수많은 범작들 가운데 드물게 걸작을 내보이는 것이다. 현실의 범죄가 더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상황에서 웬만한 범죄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호소하기란 여간해선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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