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산타라는 알리바이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선물이 '선물'로 주어지려면 어떤 상호적 관계나 교환, 부채 의식 등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어떤 선물도 무의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거나 내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혹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선물이 오고 간 것이 아니라 단지 선물로 포장된 '거래'나 '뇌물'이 오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물이 진정한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일방적이어야 한다. 진정한 선물이 되려면 선물을 받는 쪽에서뿐만 아니라 선물을 주는 쪽에서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해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산타라는 알리바이가 필요한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산타는 아빠의 선물을 뇌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등장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아니라 '산타'가 선물을 준다고 믿는 이상 '크리스마스 선물'은 실패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이 자는 사이에 다녀가는 산타에게 아무리 선물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산타가 선사한다고 믿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채무 상환의 의무가 없는 완전한 선물이다.

'울면 안 돼!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라며 부르는 캐럴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담고 있는 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울어도 된다. 착하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대가 없이 주어지는 대문자의 '선물'이니까.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아. TV나 어린이집에서 본 산타는 산타를 흉내 낸 것이지 진짜 산타는 아냐. 산타는 이번에도 선물을 주셨지만 그 이유는 아빠도 몰라."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야 하고, 밥을 먹었으니 일을 해야 하고, 울지 않은 착한 아이이기 때문에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세계에는 행복이 없다. 돈을 받고 특혜를 주고, 청탁을 위해 명품가방을 건네는 것 뒤에는 호의를 가장한 지배욕이 웅크리고 있다. '대가 없는 선물', 선물을 뇌물이 아니라 '선물'로 주겠다는 의지는 지배의 의지가 아니라 사랑의 의지다. 그것이 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정신일 것이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이유는 단지 선물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 세상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였고 나는 그 온기가 좋았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뚜렷한 목적 없이, 예상되는 시간과 장소까지도 벗어난 선물을 누군가에게 해보면 어떨까? 그 선물이 이 세계를 우리 모두에게 조금은 더 따뜻하고, 우호적인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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