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은 지역주의 '조커' 역할
충청권 의원들, 맹주 따라 거취 선택
친박-비박도 반 총장 영입에만 관심
보수정치 파탄 원인 찾아 거듭나야
"백마가 주인 없어 승천을 했던 삼신산의 정기를 받아 하늘이 내린 모체로부터 충청도에 출생하셨네. 오대양과 육대주를 아우르시는 대한의 아들. 군자대로행 품은 뜻으로 일백하고 아흔두 나라에 평화의 불꽃 지피시는 단군의 자손 반기문. 부모님 주신 총명함으로 국원성(충주)에 출생하셨네. 학창시절 선한 마음 흔들림 없이 천지간에 일류문명까지 덩이지게 할 거목이어라."
반기문 팬클럽 창립총회에서 회원들이 부르려다 취소한 노래의 가사란다. 비슷한 풍경을 2012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때 박근혜를 지지하는 모임에서 어느 교수가 부르던 박근혜 찬가. "꽃 중의 꽃 박근혜 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북조선에 이어 남조선에서도 '위대하시며 영명하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불러도 불러도 그 이름 길이 빛나실' 위대한 지도자가 나실 모양이다.
귀국이 임박하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반기문 팬클럽에서 문자를 보내온다. 가관이다. 계룡산 정기를 받아 정도령이 출현하셨단다. 실제로 반 총장을 '정도령'으로 여기는 세 세력이 존재한다. 폐족의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 풍찬노숙을 시작한 개혁보수신당, 그리고 최근 당세가 위축된 국민의당. 흥미로운 것은 반 총장은 이 중 어디로 가도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괜히 '유엔의 투명인간'이라 불린 게 아니다.
아직도 그는 자기가 어느 쪽으로 갈지 밝히지 않고 있다. 한 가지 상수가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가 결국은 지역주의 놀이판의 '조커' 역할을 할 거라는 점이다. 새누리당으로 가면 'TK-충청 연합', 개혁보수신당으로 가면 '영남-충청 연합', 국민의당으로 가면 '호남-충청 연합'. 어느 쪽으로 가든 그의 역할은 충청도를 자산으로 반(反)문재인 지역주의 연합을 완성시키는 데에 있다.
이 지역주의 정치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새누리당의 충청권 의원들. 이들은 반기문 총장의 선택에 따라 자신들의 거취를 정하겠단다. 한마디로 정책이나 이념이 아니라 지역맹주의 거취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겠다는 얘기. TK에서 충청으로 적만 옮겼을 뿐 하는 짓은 똑같다. 이들이 새누리당에서 나와 '개혁보수'를 자처하고 다닐 거라 생각해 보라. 아찔하지 않은가?
반기문 총장이 어떤 정치철학을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관료생활을 통해 습득한 그의 인생철학만큼은 확고해 보인다. 한때 그는 새마을운동을 찬양하고, 위안부 합의를 환영하는 등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무한신뢰를 표명하며 친박 잠룡으로서 입지를 다진 바 있다. 그러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지자 "국가 리더십이 국민을 배신했다"며 잽싸게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이명박 정권 때에는 자신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에도 그의 묘소를 찾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참배를 했으나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세상에 '조건부 참배'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그랬던 그가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자 귀국 첫 일정으로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를 하겠단다. 이번 참배도 꼭 '비공개'로 하시기 바란다.
국민의 시선에서는 친박이나 비박이나 '오십보백보'다. 해야 할 것은 보수정치의 파탄의 원인을 찾아 진정으로 거듭나는 것. 하지만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제 당으로 반도령을 모시는 데에 있는 듯하다. 한쪽은 비대위로, 다른 쪽은 신당으로 '혁신'의 제스처를 취하나, 그 알량한 조치마저 실은 오로지 반도령이 몸을 담기에 부끄럽지 않은 분위기를 세팅하기 위한 몸짓으로만 보인다.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라는 농담이 있다. 어느 날 간수가 죄수들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너희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가져 왔다. 뭐부터 들을래?" 당연히 좋은 소식부터 들어야지. "오늘 너희 속옷을 갈아입게 해주겠다!" 죄수들은 환호한다. "이어서 나쁜 소식. 너희들끼리!"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친박이나 비박이나, 내 눈에 삼신산 반도령 모시기 소동은 자기들끼리 속옷 바꿔 입고 그 악취를 싸구려 향수로 덮어씌우는 꼴로 보인다. 온 나라에 천박한 향내에 섞여 썩은 내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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