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북아프리카의 소국 튀니지에서 첫 불길이 솟았다. 그 '아랍의 봄'이 6주년을 맞았다. 아랍의 봄은 2010년과 그 이듬해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여러 나라들을 휩쓴 시민 봉기 운동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장기집권과 독재, 부정부패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던 나라들이었다. 곪고 곪아 언젠가는 터져야 할 종기였는데,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첫 봉기가 일어난 것이었다. 튀니지의 시민 저항은 이웃 나라들로 급속히 확산되어 리비아, 이집트, 예멘에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알제리, 바레인, 이란, 요르단 등으로도 퍼져 나가 크고 작은 시위가 잇따랐다.
몇몇 나라들에서 독재자들이 쫓겨나는 등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을 힘겹게 내디뎠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짧았던 걸까.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갈 길은 아직 멀다. 튀니지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리비아와 예멘에서는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고통받고 있다. 특히 5년 9개월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는 21세기 최악의 유혈극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힘겨우나 멈추지 않으리라 긍정한다.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에…. '역사의 발전은 자유를 향한 노정'(헤겔)이므로.
2016년 12월. 지극히 사소한 개인사를 좀 실토할까 한다. 개인적으로도 12월은 충격의 시간이었다. 요즘 입 안에 대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참다, 미루고 미루다 한해가 끝나가는 12월이 되어서야 치료를 결심했다. 병원에 간 첫날 의사는 "이 미련한 인간!" 하면서 다짜고짜 어금니 두 개를 뽑아버렸다. '앓던 이'를 뽑았으니 시원하기는 했지만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후 다시 갔더니 이번엔 반대편 잇몸에다 메스를 대며 '고문'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니 각오하란다. 내년까지 이 고통스러운 치료가 계속될 거라니 겁이 난다. 어쩌겠는가. 입 안이 그렇게 병들어가고 있는데 모른 척, 괜찮은 척한 내 책임인 것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아 새해엔 좀 더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야겠다.
또 2016년 12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깊은 상실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다. 지도자에게서 받은 깊은 실망감은 국민들을 집단 우울증에 빠뜨리고 말았다. 재벌들의 검은 거래에 가슴을 쳤고, 정권과의 유착에 아연해했다. 국민들은 너무나 아프다. 정유년 새해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새해에도 걱정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뉴욕 타임즈는 최근의 보도에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개인의 부패 문제가 아닌'제도적 부패'(systemic corruption)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제도적 부패'는 부패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되어 체제화된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 부패가 사회 시스템에 녹아든 상태이다. 지금까지 몸 안에서 종기가 자라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그 종기가 드디어 곪아 터진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실망과 좌절감은 더욱 컸다.
하지만 실망하고 우울해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이런 부패 스캔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조사를 거쳐 잘못된 점을 고치기만 한다면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되돌릴 수 있다. 지금 당장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결국에는 좋은 뉴스가 된다고 한다.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지금이라도 그 염증 부위를 알아내었으니 말이다. 아픈 곳이 발견되면 수술을 하든, 약을 처방하든 해서 고치면 된다. 모르고 지났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나중에 '고황지질'이 되어 더이상 어쩌지도 못할 지경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약간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지나치게 낙관적인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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