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기습에 대한 일본 우익의 생각은 전쟁을 막기 위한 외교 교섭을 미국이 고의로 무산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교섭에서 미국은 일본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만을 제시함으로써 일본은 떠밀려 전쟁에 뛰어들게 됐다는 주장이다. 간단히 말해 전쟁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억지다.
일본 우익이 그 근거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례가 히로히토 일왕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무산이다. 태평양전쟁이 터진 1941년 미국과 일본은 일본의 중국 및 동남아시아 침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루한 교섭을 벌였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미'일 정상회담이다.
회담은 미국이 거부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현상 변경' 즉 중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지금의 베트남)에서 군대 철수를 일본은 수용할 뜻이 없음을 일관되게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회담이 열렸다 해도 결렬될 것이 뻔했다. 회담에서 일본은 구체적인 시점과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중일전쟁이 해결되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하겠다"고 얼버무리려 했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이 지목하는 또 하나 미국의 전쟁 도발 증거는 1941년 11월 6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코델 헐이 제안한 10개 항의 '합중국과 일본의 협정을 위한 기본 제안 개요', 이른바 '헐 노트'이다. 내용은 기존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제스(蔣介石) 정부만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이는 일본이 세운 만주국과 장제스와 대립하던 왕자오밍(汪兆明) 정권의 인정 및 지원을 끊으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중국 및 동남아시아의 정치'군사 정세를 1931년 만주사변 이전으로 되돌리라는 소리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를 두고 일본 우익은 일본이 먼저 총을 쏘게 함으로써 개전(開戰)의 책임에서 빠지려는, 미국의 교묘한 '역사적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주장한다. '피해자 코스프레'의 전형이자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침략과 불법 점령이란 기정사실은 침해받을 수 없는 일본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해 일본 해군의 기습으로 전사한 미국 장병을 애도만 했을 뿐 전쟁 책임은 사과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일본은 미국의 전쟁 유도 음모에 말려 어쩔 수 없이 '자위적 전쟁'을 했다는 우익의 생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진주만 바다 아래 영면(永眠)한 미국 장병들은 이를 보고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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