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화재의 아픔을 나누고자 영업을 중단했던 서문시장 야시장(이하 서문야시장) 상인들이 재개장에 나서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 4지구 상인들이 서문야시장 개장 이후 심야시간대 화재 위험이 더 커졌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서다. 서문야시장은 지난달 30일 화재 이후 대구시와 논의해 한동안 영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큰 피해를 입은 이웃 4지구 상인들을 두고 떠들썩하게 영업하기 미안하다는 이유다. 이들은 4지구 피해 대책이 나올 때쯤 재개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직원 월급은 밀리고 가족 생활비도 부족해졌어요"
4지구 상인들의 임시 이전지가 결정된 현재까지도 야시장은 여전히 휴업 중이다. 서문야시장을 바라보는 4지구 상인들의 시선이 전에 없이 매서워졌기 때문이다. 24일 야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피해복구 성금 460만원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4지구 비상대책위원회 측으로부터 "이 돈은 받지 않겠다. 야시장 상인은 여기 오지 말아 달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서문야시장은 이런 가운데 영업을 재개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해 개장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오늘(29일)까지 휴업 한 달째, 야시장 상인 사이에서는 생계 곤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만식 감자요리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야시장에서 처음 창업해 이곳에서만 장사를 하고 있다. 한때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셰프로 일하다 독립을 꿈꾸던 차에 대구시가 야시장 셀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왔다. 레시피를 개발하고 포장용기와 매대를 꾸미는 데 초기 투자금 300만원가량을 들였다. 평일엔 혼자, 주말엔 아내와 함께 재밌게 장사하고 있었다.
생소한 음식을 반년 간 팔면서 점차 브랜드 인지도를 쌓던 중이었다. 지난달엔 월 50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려 그 수익으로 아내와 세 자녀에게 맛있는 밥과 옷을 실컷 사줬다.
그러던 중 화재로 야시장 문을 닫고부터는 5인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그는 "처음엔 고통받는 이웃 상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기 위해 휴업에 동참했다"며 "지금은 하루라도 장사를 못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큰 부담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야시장 인기 메뉴인 삼겹야채말이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손님 한 명에게 2천500원짜리 음식을 팔면 800원이 남는다. 그 돈을 벌기 위해 퇴직한 동생, 직원들과 함께 4시간 내내 음식을 굽고 팔았는데 그런 소득마저 줄어드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 월급을 줄 수가 없어 사비까지 털었다"며 "미리 구입한 500만원 상당의 식재료'소스도 다 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소스 제조업체는 우리 때문에 대량 생산해놓은 소스를 손해 봤다고 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들은 "청년과 중장년들이 저마다 창업의 꿈을 안고 입성한 서문야시장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장사를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도 "4지구 상인들은 서문야시장을 이웃으로 인정해 재개장을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운영 주체인 대구시는 재개장을 위해 중재를 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서문야시장도 화재 불씨" vs "고마운 이웃, 영업 재개했으면"
서문시장 4지구 상인들이 이유 없이 야시장 운영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야시장과 노점상이 또 다른 화재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운영 재개에 대해 부정적이다.
4지구 한 상인은 "야시장과 노점상은 밤늦게까지 가스설비를 사용하는 탓에 화재의 직접 원인이 될 수 있다. 앞서 오후 7시에 시장을 닫을 때엔 서문시장을 일찌감치 폐쇄했지만, 야시장 개장 후부턴 자정이 넘도록 시장을 배회하며 담배꽁초를 버리는 외부인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피해 상인들의 감정이 여전히 싸늘한 것도 야시장 운영 재개를 말하기 조심스러운 이유다. 4지구 비상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지금은 우리도 경황이 없어서 야시장 운영 재개를 논할 상황이 아니다. 대구시 정책으로 운영하는 야시장을 무작정 막겠다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는 "야시장이 서문시장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 것도, 청년 손님들을 유입시킨 것도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피해 상인들이 화재 원인으로 의심되는 주변 곳곳에 분노한 마음을 돌리고 있으니 지금 야시장을 재개장하면 그 화살이 야시장에 돌아갈까 봐 걱정스럽다"고 했다.
야시장 상인들의 성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상인들은 여전히 화재 원인이 노점상 또는 야시장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시장 주변을 돌아다닌 외부인일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야시장의 성금을 선뜻 받기에는 이래저래 부담이 컸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이웃인 서문야시장이 재개장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나온다. 4지구 한 상인은 "크리스마스 연휴 때 야시장이 개장한 줄 알고 서문시장에 찾아온 젊은이들을 많이 봤다. 야시장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는 증거"라고 했다. 다른 한 상인도 "야시장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도 아니고, 부수적인 화재 위험 요인을 없애면서 야시장도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고 본다"며 "야시장 상인들은 대목인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휴에도 장사를 내려놓고 아픔을 함께 나눠줬다. 고마운 마음을 봐서라도 하루속히 재개장을 허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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