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배에서 영문도 모른 채 천천히 수장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말고. 거의 실시간으로 이들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일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직도 가슴 아파하고 있는 이들 말고.
침몰한 여객선에서 실종당한 이들을 찾기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 잠수병을 얻어 대리운전으로 힘겹게 생계를 잇는 와중에도 참사 진상 규명 활동에 매진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구한 이들 말고.
가방에 쟁여놓은 컵라면 챙겨 먹을 시간도 없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이거나 공중 화장실에서 낯모르는 남자가 휘두른 칼에 맞아 영문 모를 죽임을 당하는 이들 말고.
초기 대응에 실패해 2천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공장식 축사에서 고통받다 살처분 당하는 걸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던 이들 말고.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 부지별 원전 밀집도와 규모가 가장 큰 나라, 원전 30㎞ 반경 내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 언제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두려운 이들 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유유자적 상상할 수 없는 권력과 재력을 휘두르며 살아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오랫동안 숨겼던 민낯을 드러냈다. 쌓이고 쌓인 적폐들이 하나 둘 추악한 실체를 드러낼 때마다 우리들은 경악하고 경악했다. 분노한 수백 만의 우리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들은 거리에서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결국 우리들이 이겼다. 이 모든 사건의 우두머리는 결국 권좌에서 내려왔다.
특히 헌정 사상 최대 규모 집회로 기록될 '5차 촛불집회'는 전 세계가 일제히 보도할 만큼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다. "매우 평화로웠고 거의 축제 같았다(뉴욕타임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래 최대(블룸버그통신)"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 가운데 하나(로이터통신)"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거리의 시위 물결 (AP통신)".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이나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홍콩의 '우산 혁명'보다 평화롭게 진행된 데다, 수백 만의 시민들이 참가했음에도 경찰에 연행된 이가 한 명도 없었던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매 집회가 끝날 때마다 현장에 남아 쓰레기를 치우고 담배꽁초를 줍는 이들이 있었다. 모두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독학으로 8시간 49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낸 한 네티즌도 평범한 시민이었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성주 군청 한쪽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이들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인(凡人)이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말라"는 아픈 절규로 오래 기억될 민간잠수사 고(故) 김관홍에게 뒷일을 부탁받았다고 말해주는 고마운 이도 꼭 기억하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이들 하나하나가 모인 우리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에서 살 충분한 권리가 있다.
평범한 당신과 내가 모인 우리가 거리에서 꺼뜨리지 않고 밝힌 수백 만의 촛불로 얻어낸 탄핵 소추안 가결은 이제 겨우 '작은 출발'인지도 모른다. 이 '승리의 기억'은 계속 더 좋은 나라를 상상하고 요구하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앞으로 화수분처럼 계속 쏟아질 진실들에 눈감거나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추악한 독재자와 무능한 그의 딸, 그리고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불의하고 무도한 무리들이 너무 오래 이 나라를 지배해왔다. 그들에게서 다시 찾아와 새롭게 세워야 할 아름다운 나라가 있다. 당신과 내가 함께 모여 살고 싶은 나라,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그 나라가 저기서 우리를 부른다. 가자, 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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