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한민국 길을 찾는다] 릴레이 기고 <1>김병준 전 부총리

"정치적 메시아 기다려서는 안 돼…국민들이 '자기 혁신' 통해 희망 찾아 나서야"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그리 밝지 않다. 나아질 기미라도 있으면 다행이련만 그렇지도 않다. 모든 지표가 오히려 더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수출도 내수도 시원치 않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70%, 있는 공장이나 사업도 다 돌리지 못하는 판에 새로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겠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체감 실업률 10% 안팎에 체감 청년실업률은 30%를 오르내린다. 투자절벽이 고용절벽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나? 결국 이 돈 저 돈 끌어다 커피집이다 치킨집이다 해보지만 5개 중 4개는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이래저래 죽을 판이다. OECD 국가 평균보다 하루 2, 3시간을 더 일하지만 가계소득 증가율은 물가인상률을 크게 밑돈다. 빚내 집 얻고, 빚내 아이들 공부시키다 보니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어느덧 170% 가까이 된다. 금융위기 이전 미국의 135%를 훌쩍 넘고 있다.

이런 형편에 불안한 이야기만 들린다. 당장에 미국 금리가 인상되고 있다. 우리도 올릴 수밖에 없는데, 0.5%만 올라도 가계의 이자 부담이 연 7조원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트럼프정부의 통상 압력이 예상되는가 하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도 거세다. 또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글로벌 분업체계의 변화에다 북핵 문제까지, 그야말로 머리가 아프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산업구조를 재편하여 새로운 글로벌 분업체계에 맞추는 일, 새로운 기술과 인력을 개발하고 양성하는 일, 사회 경제 곳곳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하는 일과 이를 위한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일 등이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대통령과 정부가? 국회가?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기대난망이다. 이런 기대와 희망은 버리는 것이 옳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 비전도 전략도 없는 정치, 오로지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한 패거리 정치 때문이다.

이번의 탄핵 정국만 해도 그렇다. 여권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스스로 만든 대통령을 부정하며 자기 살길을 찾고 있다. 야권도 다를 바가 없다. 국정의 모든 분야가 위중한 시기에 새 총리를 정해서 국정을 챙기게 하는 일까지 내팽개쳤다. 그저 촛불 민심의 꽁무니에 붙어 탄핵과 하야만 외쳤다.

이런 정치로 무엇을 하겠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기대난망이다. 제대로 된 공장과 공정에서 좋은 물건이 나오듯 역량 있는 대통령도 정치라는 공장과 공정이 좋아야 나온다. 이런 정치에서 어떻게 좋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겠나? 또 나온다 한들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나?

그러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나 자신이다. 각자도생, 스스로를 바꾸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 전쯤의 일이다. 서울 롯데호텔에서 모범택시를 탄 후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힘드시죠?" 그런데 기사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자신은 몇 년 전부터 모범택시가 안 될 줄 알았단다. 밤늦게 취객들 모시는 게 주업인데, 그 공간을 대리운전이 차고 들어오더라는 거다. 어떡할까 고민하다 일본어와 서울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몇 년 뒤 일본 손님들에게 서울을 소개하곤 했는데, 이에 만족한 손님이 심지어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다른 손님을 소개해 주곤 하더란다.

때로는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 손님이 많다고도 했다. 그래서 일본어를 하는 기사들과 기업형 네트워크를 만들어 손님을 서로 소개해 주곤 한다고 했다. 어떤가? 자기혁신을 통해 자신을 구하고, 더 나아가 동료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만든 이 택시기사의 각자도생이.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정치 상황 아래에서는 오로지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그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열정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그 택시기사만 해도 그렇다. 일본어를 배우는 게 쉬웠고 서울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쉬웠겠는가.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

살아남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 네트워크 사회, 즉 각기 잘하는 일이 따로 있는 사회, 그래서 작은 일 하나에도 조언과 협력이 필요한 사회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라도 가까이 있는 이웃과 지역사회에 상생의 손길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공동체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다음, 국가를 향해서도 한 발 앞으로 나가야 한다. 국가가 잘못되면 나 또한 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말이다.

정치와 국가를 바로잡아 나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나를 먼저 살려 공동체와 국가를 살릴 것인가? 2017년 아침, 감히 나를 먼저 살릴 것을 권한다. 나의 무엇을 바꾸어 나를 살릴 것인가? 이런 질문이 올해의 화두가 되었으면 한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이웃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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