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좋은 대학

수시 합격자 발표가 지난주로 끝나고 지금 정시 원서 접수가 한창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자신의 수능 점수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원서 접수 상황을 보면서 눈치를 보는데, 요즘은 점수가 많이 남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고 있다.

여기서 따옴표를 친 '좋은'은 같은 말이지만 의미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앞의 '좋다'는 대상이 다른 것과 비교해서 수준이 높거나 가치가 있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때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입시 기관들에서 내놓는 배치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학부모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런 주문처럼 외우는 대학 서열을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학벌주의가 우리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내세울 것이 학벌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런 비교에 집착을 한다.

이에 비해 뒤의 '좋다'는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한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때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직접 대학에 가서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고 생활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지잡대라고 비하해도 대학 공부를 재미있어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은 자기가 있는 대학이 된다. 올해 구미에 있는 4년제 대학 입시 설명회에 갔더니 학교 홍보물에 우리 학교 출신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아주 착실하고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들보다도 먼저 취직해서인지 인물도 아주 훤해 보였다. 이 학생이 군대 가기 전 학교에 왔을 때 이야기가 전공 공부도 재미있고, 교수님들도 잘해 주셔서 아주 만족한다고 그랬었다. 이 학생에게 '좋은 대학'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해서나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나)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위의 학생의 예는 특수한 경우고, 확률적으로 보면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이 학생들이 느끼기에 '좋은 대학'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대학에서 잘 가르쳐서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은 데서 생기는 영향이 크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력으로만 승부한다면 '좋은 대학'에 대한 순위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배치표의 상위권에 있는 대학은 너무 쉽고 안일한 방법으로 '좋은 대학'의 이름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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