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세밑 한파 녹인 영천 10억원 장학금 익명 기부

경북 영천시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조성하기로 한 영천시장학금 200억원 목표를 지난해 달성했다. 매년 10억5천여만원씩 19년을 모으면 2020년까지 이뤄지지만 계획보다 3년 앞당겨 목표를 채웠다. 이번 일은 몰래 지난해 두 차례 8억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한 의(義)로운 한 남매 가족의 기부로 가능했다.

이번 기부는 세밑 한파를 녹이고 어두운 연말 정국에 빛난 촛불같이 밝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부 주인공인 조(曺) 씨 3남매는 지난 2015년 10월 장학기금 10억원을 기탁하기로 뜻을 모으고 지난해 4월 5억원을 전달하고 12월에 3억원을 맡겼다. 올 상반기에 나머지 2억원마저 내놓기로 했다. 영천의 단일 기부로는 최고지만 이들 남매는 이름조차 밝히지 말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들의 조용한 기부도 관심이지만 얽힌 사연은 더욱 그렇다. 이들 기부에는 3남매 중 먼저 떠난 누나의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좋은 일 하고 가자'는 생전 결의와 함께 영천시의 고마움을 갚는 보은의 뜻이 서려 있어서다. 바로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유배에서 풀려나 의병을 모아 왜적 토벌에 나선 선조 조호익(曺好益)을 모신 도잠서원을 시에서 관리하며 보살핀 데 대한 감사의 정성을 담은 탓이다.

대가를 바라거나 널리 알리는 일이 흔한 요즘 보기 드문 기부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적 있는 옛 사람을 마땅히 관리하는 행정 당국에 보은까지 했으니 특별한 기부임이 틀림없다. 기탁자도 조상 이름으로 대신하면서 선조를 다시 드러냄과 함께 영천의 옛 인물 선양사업까지 빛냈으니 명분과 실리가 맞는 새로운 기부다. 남은 일은 3남매는 물론 수많은 기탁자의 뜻을 제대로 살린 장학금 운영이다. 이는 당국의 몫인 만큼 영천시는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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