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달구벌' 이야기

지역에서 나오는 신문을 거쳐 독자들과 한 달에 두 차례씩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첫발을 내디디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먼저 '달구벌'(대구)에 인연을 둔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모래내'라는 이름이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온 나라 여기저기에 많이 있었듯이(안타깝게도 지금은 거개가 한자 이름으로 바뀌어 '사천'(砂川)으로 적혀 있다) '달구벌'도 지금 '대구'만 가리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기를 들자면 한때 신라의 도읍이었던 '서라벌'(경주)도 '달구벌'로 불렸으리라는 게 내 짐작이다. 고려시대에 송나라 사신으로 왔던 손목이 쓴 '고려도경'이라는 글에 '계림유사'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계림유사'에는 옛 우리말이 350개 남짓 실려 있다. 이 가운데는 '경주'를 '계림'이라고 한 기록이 나온다. '계림'의 말 풀이를 두고 여러 학설이 있으나 아마 '달구벌'을 그렇게 한자식으로 옮겼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조금 번거롭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까닭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달'(達)은 '다', '따', '땅'의 옛 이름과 닿아 있다. 요즈음도 쓰이는 '응달', '양달', '비탈'(빗달)이 이런 짐작을 뒷받침한다. 그늘진 땅이 '응달'(음달)이고, 볕 바른 땅이 '양달'이고, 경사진 땅이 '비탈'(빗달)이다. 이것을 닭 계(鷄)로 적은 까닭은 어쩌면 손목이 '달'이라는 말을 잘 못 알아듣자 통역하던 사람이 닭을 가리키면서 이것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리되었을 수 있다. 다음으로 왜 수풀 림(林)이 그 뒤에 붙었는지 의아해할 수 있겠는데, '닭'(달)△ '벌'(달+사이시옷△+벌)이 모여서, '△'+'벌'이 '사벌', '서벌', '수불'(수풀)로 소릿값이 바뀌었으리라고 보면 안 될까? 아니면 솟아오른 벌(솟벌)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러니까 달(땅)이 솟아 널리 벌어진 곳(벌판)을 '달구벌'(달의 벌)이라고 이름 지었겠다는 말인데, 땅 모양으로 보아 경주도 그런 곳이고 대구도 그런 곳이다. '나라'는 물(나→내)가의 너른 땅('가라', '나라', '나주' 같은 곳), 널리 벌어져 있기는 하되 언덕 위에 있는 땅은 '달구벌'. 이렇게 보면 '나라'나 '달구벌'이 꼭 한 곳만 가리키는 고유명사는 아니었던 듯하다.

언어학자나 국어학자도 아닌 주제에 이런 말을 하면 흠 잡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나름으로 대구를 아끼는 마음에서 섣부른 짐작을 털어놓는 것이니, 다음에 이어질 내 글의 속살도 얼추 비슷하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시기 바란다.

어려운 때를 거치는 이 나라 사람들 마음이 뒤숭숭할 것은 어디라고 다를 바 없겠으나, '달구벌'분들의 마음이 새해를 맞아 밝아지고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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