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동네 으뜸 의사] 장유석 경산 장유석외과의원 원장

"시골에는 '넓게 아는' 의사가 필요하죠"

장유석 원장=1960년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 출생. 계성고, 경북대 의과대 졸업. 대구파티마병원 외과 전문의.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의학 박사. 장유석 외과의원 원장. 전 경산시의사회 회장. 경북도의사회 부회장. 전 대구경북외과의사회 회장. 전 경북도의사회 캄보디아 의료봉사단 단장. 전 경북경찰청 자문의사. 전 경북도 구급구조위원회 부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경북도지사 표창 2회. 대한의사협회 회장 표창. 캄보디아 왕실 모하세나 훈장 수훈
장유석 원장=1960년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 출생. 계성고, 경북대 의과대 졸업. 대구파티마병원 외과 전문의.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의학 박사. 장유석 외과의원 원장. 전 경산시의사회 회장. 경북도의사회 부회장. 전 대구경북외과의사회 회장. 전 경북도의사회 캄보디아 의료봉사단 단장. 전 경북경찰청 자문의사. 전 경북도 구급구조위원회 부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경북도지사 표창 2회. 대한의사협회 회장 표창. 캄보디아 왕실 모하세나 훈장 수훈

"'날라리뼈'가 뭔 줄 아세요?"

장유석(57) 경산시 하양읍 장유석외과의원 원장이 느닷없이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경산 특유의 사투리로 "'꼬리뼈'라는 뜻"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금쟁이'는 무릎 뒤쪽, '세모낀다'는 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는 뜻이란다. '후내낀다'는 말도 있다. 정신적인 압박 탓에 숨이 찬다는 의미다. "이런 사투리를 알아들으면 어르신들과 교감이 탁 됩니다. 그러면 진료가 일사천리로 이뤄지죠." 경산 용성면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유쾌한 달변가였다. 허허 잘 웃었고, 이따금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는 거듭해서 "인터뷰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못된다"고 손을 내저으며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들여 대답했다. "우리 병원은 장날 오전이면 동네 사랑방이 됩니다. 어떤 날은 따로 살던 아버지와 아들이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해요. 마실 것 없냐며 다그치는 분들껜 커피도 내드리고. 저도 하양 사람이 다 됐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끈 의사의 길

밝은 표정을 잃지 않던 장 원장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목도 메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얘기할 때였다. 그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뇨를 앓고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그를 부르며 쓰러졌다. 놀란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30분을 달려 용성면 소재지에서 유일했던 의사를 모셔왔다. 자전거로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 애써 의사를 모셔왔지만 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제가 의사가 돼서 보니 아버지가 저혈당 쇼크에 빠지셨던 것 같아요.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53세. 지금이라면 제가 돌봐 드렸겠죠. 지금 생각해도 참 안타까워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장 원장이 의사의 길을 꿈꾸게 된 이유가 됐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로 나왔다.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대구로 전학을 와서 받은 첫인상이 '나도 이제 3층짜리 학교 건물에서 공부하겠다'였어요. 시골에는 다 단층건물이니까. 그리고 '아, 짜장면이 이런 맛이었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죠." 그는 시골 정서를 간직한 순진한 학생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영어 과외를 받으라는 교사의 말에 과외비를 내야 하는지도 모르고 갔다가 내쳐지기도 했다.

의과대를 졸업하고 대구파티마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그는 경산에 개원하기로 결심했다.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 정서를 물려받았고, 시골 풍습을 잘 이해하니까 고향에서 개원을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산을 떠날 용기도 나지 않았고요. 환자도 나도 마음이 편하고. 잘했다 싶어요."

그는 "시골에는 넓게 아는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하다가 다쳐서 병원에 온 환자들 중에는 고혈압'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도 있고 피부질환이 있는 분들도 있어요. 동네 의원이 없으면 환자들은 일일이 큰 병원에 가야 하잖아요. 고도로 전문화되진 않았지만 지역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동네의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역 청소년을 동량으로 키우는데 관심

'제너럴리스트'가 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장 원장이 주말을 이용해 다양한 학회와 세미나를 찾아다니는 이유다. "관심 있는 분야의 학회는 다 갑니다. 성장의학회, 영양학회, 소화기학회 등. 요즘에는 심혈관계 질환이 많으니까 관련학회도 가고요. 다 알진 못해도 최신 지견 한두 개는 꼭 기억을 하죠."

그는 "의사는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 '리뉴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는 의사가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리뉴얼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죄'를 짓는 겁니다." 가끔은 서울에서 수련하고 있는 아들을 불러 함께 세미나를 듣기도 한다. 의사로서의 자세가 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를 찾는 환자 중에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자녀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지키는 노인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요. 진료실에서 마음 속 얘기를 풀어놓으면 따로 처방을 안 해도 병이 거의 다 나아요." 그는 부모의 질환을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마다 않는다. 노인들은 불편한 곳이 있어도 원인이 뭔지 정확하게 자녀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가 진료 중에 멀리 사는 자녀에게 전화를 해서 어떤 질환이 있으니 검사를 받아보시라고 설명을 해요. 어르신들이 제 얘기를 잘 기억 못 하시잖아요. 그런 게 동네 의사 역할이 아닐까요."

장 원장은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부할 기회를 놓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서다. 그가 매년 수백만원의 장학금을 지역 청소년들에게 내놓은 지도 20여 년을 헤아린다. 그는 "액수가 크지 않다"며 멋쩍어했다.

또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진료비를 면제해주고, 청소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생명사랑지킴이' 사업에도 동참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지역의 원동력이 되고, 다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는 앞으로 지역 청소년들이 경제적인 압박을 덜 받으며 공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게 꿈이다. "지역의 젊은 청소년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다면 훨씬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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