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재원의 새論 새評] 보수 TK, 무엇으로 사는가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먼저 참보수와 지역주의 구별

패권 논리와 헷갈려서는 안돼

대화 물꼬는 트고 북핵엔 단호

진보 가치에 대해 마음 열기를

"이우가 상소를 다 읽자, 주상이 (감정을) 억제하느라 목이 메어 소리를 내지 못해 말을 하려다가 말하지 못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되풀이하다가 한참 후에 이르기를, '마음이 이미 억눌리고 막혀 말에 두서가 없어서 말하자니 먼 곳에서 온 유생들이 보는 데 좋지 않을 듯하다.'"(조선왕조실록, 정조 16년 윤 4월 27일)

목숨을 건 상소문을 들고 상경한 영남 유생들을 직접 마주한 정조. 그저 울먹이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 당일 이렇게 외쳤던 그였지만 16년 동안 말뿐이었다. '사도세자 신원을 금지'한 영조의 유언, 여기다 정국을 장악한 노론 대신들 때문이었다.

"사도세자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역적들을 처단하라."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壬午禍變)이 꼭 30주년 되던 1792년. 영남 유생 1만57명의 연명으로 작성된 만인소(萬人疏)는 정국을 직격했다. 노론은 경악했다. 상소 우두머리 처형을 주장했다. 정조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채근만 했다. 일종의 정치적 타협책. 돌아오자마자 유생들은 또다시 만인소를 올린다. 이번엔 1만368명. 그럼에도 사도세자 신원은 불발된다.

그러나 정국엔 반전의 물줄기가 생겼다. 임오화변 역적 토벌을 놓고 노론이 시파와 벽파로 나뉜 것. 정조는 우호 세력이 된 노론 시파를 업고 필생의 역작에 들어간다. 수원화성(華城)의 건설. 딱 거기까지였다. 갑작스러운 정조의 죽음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정조의 개혁도, 영남 유생들의 꿈도.

세월이 흘러 1976년, 안동 예안의 왕고모댁을 찾은 어린아이는 무서운 얘기를 듣는다. 이른바 '정조 독살설'. "일가 아지매가 아이들에게 밤을 깎아주며 '나라님을 독살한 숭악한 놈들'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쟁이란 것이 뭔지도 모를 어린 나이이건만 이야기에 담긴 그 격렬한 감정들, 증오들, 원한과 복수의 악무한(惡無限)적 반복들이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이인화 '영원한 제국' 작가의 말 중) 대구경북(TK)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이인화의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고 한다.

흔히 TK를 보수의 본산이라고 한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정신적 유산을 잘 지켜 후대에 물려주고자 하는 신념, 약자를 보호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연대의식, 스스로 세운 원칙을 어기지 않는 강한 의지." 영국의 보수사상가 로저 스크러턴이 내린 보수의 정의다.('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중) 이런 관점에서 만인소와 이인화 경험은 보수 가치와 딱 맞아떨어진다.

2012년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TK에서 투표율과 득표율에서 각각 80%를 기록했다. '박정희의 후광에다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 이미지', 보수 TK의 몰표는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가짜 보수로 드러났다.

보수 TK로선 조상 앞에 낯을 들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유승민과 주호영 의원이 참보수를 외치며 탈당했다.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그간 투표 행태가 진짜 보수 가치에 따른 것이었느냐는 점이다. 최근 국정조사 청문회의 위증 교사 논란에 휩싸인 의원 다수가 TK 출신이다. 총선 때 TK에 횡행했던 '진박 마케팅'의 예고된 결과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인화(이화여대 류철균 교수)도 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TK 얼굴에 먹칠을 했다.

보수 TK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먼저 참보수와 지역주의부터 구별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 지역패권을 앞세운 교묘한 논리를 보수와 헛갈려선 안 된다. 둘째 안보 제일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북핵 개발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대화와 교류의 물꼬는 터야 한다. 북한 동포라는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 보수의 참가치다.

이참에 진보 가치에 대해서도 TK가 마음을 열면 어떨까. 만인소를 썼던 TK 선조들은 당시 기준으로 상대적 진보 세력이었다. 기득권에 집착했던 수구파 노론과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TK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티격태격 다퉈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건강해진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진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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