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독일, 미국, 멕시코, 영국, 일본 등 국적이 다채로웠다. 한 반에 열두 명 정도 인원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방식이 매우 자유로웠다. 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그날의 주제를 정해 토론을 벌였다. 모두 커다란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전을 들춰가며 공부하고, 무엇보다 강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한번은 강사가 나를 지목하면서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과 다른 프랑스의 수업 방식을 예로 들었다.
"선생님 혼자 강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도록 이끌어간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한국의 강의실 풍경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능동적인 토론문화에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다. 동양권 친구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수줍어하거나 머뭇거릴 때가 많았는데,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였다.
윗글의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중 프랑스 그르노블 유학 시절(1974년) 이야기를 이렇게 썼다. 당시 대통령은 토론식 프랑스 수업 방식을 보고 깜짝 놀란 듯하다.
박 대통령이 신기하게 여겼던 프랑스는 논술형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e)의 나라로 잘 알려져있다. 바칼로레아의 유명세처럼 프랑스는 교육에 관한 한 지구상에서 가장 선도적 행보를 걸어온 나라다.
프랑스 교육을 도약시킨 교육 사상가를 꼽으라면 단연 니콜라 드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1743~1794)를 앞자리에 두지 않을 수 없다.
1791년 입법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모든 시민에게 공통의 공교육을 제공하고 무상교육까지 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여자와 유색인종까지 포함시키는 의무교육과 교육 기회균등의 이념을 제시, 공교육 혁신을 주창했다. 근대 국민교육사상의 뿌리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많은 학자들이 여긴다.
콩도르세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자유와 정치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교육이 전제 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민주주의는 교육이라는 토양이 있어야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 계몽주의자의 책상머리 이상론으로 치부됐던 콩도르세의 의무교육 이념은 19세기 영국'프랑스 등의 의무교육 시행으로 이어지고 1919년엔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서 마침내 사회적 기본권으로 규정된다. 2차대전 이후에는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상당수 국가의 헌법이 교육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하게 된다.
콩도르세의 예측처럼 의무교육 시행은 각 나라에서 투표권의 확대로 이어졌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념과 그 실천 방안을 교실에서 깨친 국민들은 투표권 획득을 이뤄냄으로써 민주주의의 정식 참여자가 됐다.
민주주의는 바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의 유학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권위주의적 교실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프랑스 교실은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의 훈련장이 될 수 있었다. 토론을 통해 참여와 협력으로 공부하는 프랑스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였다.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 자신의 의견과 비판을 말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민주주의임을 많은 서구 선진국들이 교실에서부터 훈련시킨다.
"자유로웠던 프랑스 유학 시절이 제일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였다"고 되뇌었다는 박 대통령. 어머니의 서거로 유학 시작 6개월 만의 급거 귀국이 아니라 석'박사 과정을 통해 6년여 동안 프랑스 교육을 체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권위주의 통치자를 연상케 하는 불통과 독선, 결국 이런 연장선에서 불거진 탄핵이라는 참극은 없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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