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악성 종양'

유대인과 집시 등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의 절멸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치가 사용한 수법은 병리학적 은유였다. 이들 하위 인종은 게르만 민족을 오염시키는 '결핵, 암, 괴질, 종양, 종기'와 같은 침입자라는 것이다. 이런 병증(病症) 중 나치가 특히 관심을 둔 것은 암이었다. 나치는 세계 최초로 정부 주도의 암 퇴치 운동을 벌였는데 그 소재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을 암세포로, 암을 치료하는 수단인 X선을 나치 돌격대로 설정하고. 암 종양을 향해 총 쏘는 장면을 담은 슬라이드를 만들어 독일 국민에게 상영했다.

이런 병리학적 은유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파도 잘 써먹었다. 프랑코 장군의 언론 담당관 알바 이 테베스는 내전 중 "필요하다면 스페인 남성 3분의 1을 제거해서라도 스페인에서 볼셰비즘이라는 바이러스를 근절해야 한다"고 했다. 프랑코파는 이를 위해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전이 끝난 후 프랑코 측의 한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의 내장 속에서 고름을 짜내기 위해 외과용 메스가 필요하다."

이런 의사(擬似) 병리학적 접근은 정신질환으로까지 확장됐다. 안토니오 바예호 나헤라라는 마드리드 대학 정신과 교수는 내전이 끝난 뒤 '마르크스주의 탐닉 정신병'을 연구한다며 14개의 클리닉을 둔 심리학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연구의 결론은 잔인했다. 스페인의 종족적 소멸을 막으려면 사상이 의심스러운 부모에게서 아이를 떼어내 '국적 있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반대파를 정신병자로 모는 것은 소련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볼셰비키에 저항했던 사회혁명당 지도자 마리아 스피리도노바로, 1919년 모스크바 혁명재판소에서 요양소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정신 치료'는 1970년대까지 지속됐다. '치료'는 끔찍했다. 고문, 구타, 약물 투여 등 악랄한 방법이 모두 동원됐다. 그 목적은 나치나 프랑코의 스페인처럼 '격리'와 '박멸'이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진 탈당하라는 요구에 저항하는 친박계 의원들을 겨냥해 "악성 종양"이라고 했다. 나치 '위생정치학'의 수사(修辭)를 떠올리게 한다. 친박계가 탄핵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악성 종양'이란 섬뜩한 말까지 동원했어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정치는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난다고 할 만큼 정치에서 말은 중요하다. 말이 거칠어지면 정치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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