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지호가 만난 사람] 오준 前 유엔대사

"한국 국민에게 北 사람들은 아무나가 아니다"로 '국민대사'에

신지호 (연세대 객원교수)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제18대 국회의원
신지호 (연세대 객원교수)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제18대 국회의원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묵은 것은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자며 송구영신(送舊迎新)을 기원했지만, 묵은 것은 그대로 남았고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음 붙일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이 혼돈의 시대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국민대사로 이름난 오준 전 유엔대사를 만난 건 그가 38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차분함 속에 담겨 있는 신념과 열정, 정년퇴직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장구한 세월 동안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경험을 하셨다. 그 매 순간순간이 다 소중했겠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2014년 12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서 한 연설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사상 최초로 북한 인권 문제가 안보리 의제로 채택되고 토의가 이루어진 날이다. 안보리가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인권침해 상황이 심각해서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때뿐인데, 역사상 그런 경우는 두 차례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2년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했는데 그날이 마지막 회의였다. 약 5분간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준비한 원고를 읽은 후,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게 된 소감을 3분 정도 이야기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 동영상을 봤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사람들은 그저 아무나가 아니다"(For South Koreans, people in the North are not just anybodies)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고 숙연한 표정으로 경청하던데, 미국의 서맨사 파워 (46'여) 유엔대사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더라.

▶그는 원래 외교관이 아니고 교수와 작가를 한 인권전문가였다. 회의장을 나가면서 "안보리에서 들어 본 가장 감동적인 발언이었어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포옹과 악수를 청해왔다. 내 돌아가신 어머님이 개성 출신이고, 장인도 함경도에 사시다가 월남하신 분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를 했는데, 뜨거운 반응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이 연설은 인터넷과 SNS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인터뷰하기 전 유튜브에 들어가 보았더니 관련 영상 조회 수가 250만건을 훌쩍 넘었더라. 이 연설로 대사께는 '국민대사'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제대를 앞둔 군인으로부터 인생 상담 이메일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연설 다음 날 누군가가 나의 연설 영상에 자막과 배경음악을 넣어 인터넷에 올렸다. 800명 정도였던 페이스북 친구가 얼마 안 가 허용 한계치인 5천 명으로 늘었다. 군 제대를 앞둔 젊은이는 "대사님의 연설을 듣고 제대 후 복학과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이렇게 진지한 질문에 그냥 몇 줄 적어 보내는 것이 성의 없다고 느껴져 아예 책을 내기로 했다. 그 책이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오픈하우스, 2015년)이다.

-38년간의 외교관 생활 동안 대략 절반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셨다. 대한민국이 가장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순간과 가장 부끄럽게 느껴졌던 순간을 하나씩 말씀해 주신다면?

▶외교관으로 내가 살아온 시대는 성장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에 성공하였고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또한 민주화에도 성공하여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에 성공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G20 회원국도 되었다. 이런 게 자랑스럽다. 반면 우리 정부가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을 때 외교관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세계 외교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푸틴의 러시아와 새로운 밀월 관계를 구축(Pivot to Russia)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한국 외교는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어떻게 전망하시나?

▶트럼프 당선인은 사업으로 평생 살아온 분이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인 인물이다. 선거 과정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무리한 이야기를 한 건 사실인데 이제 당선이 되었으니 너무 막 나가진 않을 것으로 본다. 한미 관계의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중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자유무역을 강하게 비난하였다. 당선 이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사실상 무산 위기에 빠졌다.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자국에 불리한 협정이라고 여러 차례 비난한 적이 있는데 실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나?

▶자유무역협정은 어느 일방이 아니고 상호 이익을 볼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체결되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일방에게만 이익이 되는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반대가 극심했다. 국회 비준 과정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불상사까지 있었다. 반대 이유는 미국에 유리하고 한국에 불리한 협정이라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미국에서 손해를 보았다고 난리다.

▶실제 2012년 한미 FTA 시행 이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오랫동안 강대국 틈에서 살았고 실제로 피해를 본 적이 있다 보니 한국인들에게 과도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사드는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며 계속 추진을 확인했다. 그런데 한국의 조기 대선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할 가능성은?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맥스 부트 연구원이 지난달 27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에서 그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분담금과 사드 배치 문제로 한미 갈등이 격화된다 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 검토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안 갈 것으로 본다. 사드 배치는 양국 간 합의 사안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외교적 합의는 존중되어야 한다.

-오준 대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친분이다. 반 전 총장이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후배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 전 총장이 나에게 직접 아끼고 신뢰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웃음) 과거 우리나라가 못살 때 작은 규모의 팀을 유엔에 파견할 때 팀원과 팀장으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반 전 총장 10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투명인간(invisible man),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의 어디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 무력한 관찰자(powerless observer)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세계적 난제인 파리기후협약을 성사시킨 끈기와 뚝심의 리더라는 평가도 있다. 대사께서는 어떤 점수를 주시겠는가?

(*파리기후협약: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체결된 국제협약.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총 195개 국가가 서명했다.)

▶A+는 아니더라도 A학점은 주고 싶다. 반 전 총장은 역대 유엔 사무총장 8명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했고 가장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열린 자세와 마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포용적 리더십이 있어야 조정과 타협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파리기후협약은 그러한 노력으로 성사된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유럽식 교육을 받지 않은 최초의 총장이다. 문화적 차이라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본다.

-반 전 총장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카리스마 부족이다. 반 전 총장의 좌우명은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물의 리더십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를 구해낼 수 있다고 보나?

▶글쎄,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물은 가만히 놔두어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낮은 곳을 먼저 채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낮은 곳을 채운다는 게 반 전 총장의 철학이다. 이런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반 전 총장을 지지할 것이고, 반면 카리스마를 가지고 무 자르듯이 밀어붙이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반 전 총장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는 3월부터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에서 전임교수로 UN과 다자외교 등을 강의할 예정이다. 인생 2모작에 성공한 소감은?

▶아직 두 번째 인생을 시작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웃음) 은퇴하면 공직 생활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지혜를 후진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과 시민사회에 봉사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꼭 하고 싶었다. 인류의 문명 발전은 축적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지식을 문자 등으로 후세에 전했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했지, 모든 시대가 새로 시작했다면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잘한다고 해서 이 자리를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은 후배들 앞길을 막는 것이고 오만이다.

-대사는 낭만주의자인 것 같다. 흔히 직업공무원 하면 딱딱한 느낌이 드는데 학창 시절부터 드럼 연주, 밴드 활동을 하셨더라.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유엔대사 시절 직접 그린 그림으로 연하장도 매년 만들었다. 다재다능하시다.

▶취미가 그거 두 개밖에 없다.(웃음) 대학 입학 후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다시는 연주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교부에도 밴드가 있고 유엔에도 밴드가 있어 활동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림은 고교 시절 배웠는데 기왕이면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에서 연하장을 만들게 되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한 번 공직자도 영원한 공직자일 것이다. 38년간 외교관으로서 쌓은 지혜와 경륜은 오준 대사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산이다. 그는 외교부 퇴임사에서 예비군으로 대기하겠다고 했다. 국가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5분 대기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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