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거울 뉴런과 정치

새해 벽두부터 도널드 트럼프가 화두다. 지난 3일 미국의 한 정치 리스크 평가사는 올해 지구촌 10대 리스크 중 1위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을 꼽았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예측 불허의 위험 요소로 여겨지는 현실 앞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이렇게 한탄할지 모른다. "내가 이러려고 횃불 들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유행어는 시대상을 반영하는데 지난해 최대 유행어는 '자괴감'일 것이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인데, 전후 맥락 때문인지 자괴감의 뜻이 '스스로 괴로운 힘든 마음 상태'인 줄로 아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자괴감(自愧感)은 괴로움이 아니라 부끄러운 감정을 뜻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토로하기 위해 자괴감이라는 단어를 썼겠지만, 여기에 부끄럽다는 뜻이 과연 몇 퍼센트 들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 있다. 맹자가 인간의 도덕성에 관해 설파한 사단설(四端說)을 봐도 수오지심(羞惡之心'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두 번째 덕목으로 나온다.

'모든 인간은 섬'이라는 명제가 있다. 인간은 분리감 속에서 살고 있기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행위가 양심과 도덕률에 어긋나고,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누군가에게 고통을 줬을 경우 부끄러워하고 마음 아파한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거울 뉴런'에서 찾고 있다. 다른 이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동일한 반응이 나오는 뉴런이 뇌 안에 있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켜볼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자신이 고통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인지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된 이들이 우리 정치권에는 너무 많다. 권력을 많이 누리는 자리에 오를수록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지도층이 딱 그 꼴이다.

이들에게는 거울 뉴런이 잠들어 있는 듯 보인다. 후안무치한 정치가 판을 치지만 부끄러움은 늘 국민 몫이다. 부디 정유년 새해부터는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 거울 뉴런이 살아 있는 정치가 활성화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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