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따로 또 같이

해마다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수시와 정시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녀의 성적이 부모의 성적으로 인식되는 현상은 자식을 위해 과한 희생값을 치르는 부모들에게서 나타난다. 전국을 강타하던 수능 한파는 주춤해졌지만 그들에게 이 시간은 혹독한 칼바람보다 처절하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P씨는 기러기 아빠 13년 차다. 기러기 아빠로 산 배경에는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솔로의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이것이 화근인가. 어느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결국 돌아온 건 이혼 서류와 남 같은 아이들이었다. 모처럼 딸과 함께 여행을 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 장난을 치는 P씨에게 퉁명스럽게 던지는 딸의 말. "걱정하는 척하지 마요. 짜증 나." 강산이 바뀌는 시간을 넘어 만난 딸은 "말로는 우리 딸이라고 하지만 친해질 수 없어요"라며 벽을 친다. 높이를 가늠키 힘든 벽 앞에서 눈물 젖는 P씨는 억울하다.

한국인은 대가족 속 개인으로 태어나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 형상을 삶의 표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유전자 속에서 나를 찾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으로 치부된다. 특히 바깥일에 골몰하느라 대화마저 뜸해진 가장(家長), 세대 차이로 독립하는 자녀들 사이에서 빈 둥지만 남은 가정을 지키는 주부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심리적, 시간적 공허는 늦둥이 출산이나 알코올 중독, SNS 중독 같은 관계 중독으로 이어지지만 해결은 어렵다.

사람은 관계 맺기가 허술하면 불안해지고, 너무 치밀하면 억압과 희생으로 자신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건강한 관계 간의 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계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 가고, 존재로서 '함께 있는' 것이다. 함께할 누군가와 언젠가 같이할 거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고 혼자 견디는 힘, 고독력(孤獨力)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자주, 더 길게 관계 속에서 종종 길을 잃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사적 공간을 보장하고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인기다. 출판의 경우도 여럿이 함께하는 공저 출판이 부담이 적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아이디어를 모으고 분량은 나누면 출판의 꿈이 이루어진다. 이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따로'의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로'가 없으면 나를 찾을 수 없고, '같이'가 없는 분화는 연결이 사라진다. '따로'와 '같이'의 시소를 잘 타야 관계가 즐겁다. 진정한 자유는 서로의 개성을 살려주면서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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