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김영란법 시행 100일 만에 개정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5일 경제 부처 업무 보고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과 관련,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내수 부진을 이유로 김영란법을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다. 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나 1년이 경과한 것도 아니고, 고작 100일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개정하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외부 전문가의 건의를 듣고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공식적으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식대 3만원은 2003년 기준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현실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2003년에 누가 한 끼에 3만원 이상의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으나, 극소수 계층에 국한된 사례임이 분명하다.

정부가 여러 차례 김영란법 개정 의지를 밝혀왔기에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정부는 김영란법의 규정을 여러 군데 손댈 것 같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액을 올리고, 화훼 및 설'추석 선물 등에 대해 별도의 상한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요식업계와 화훼 농가, 축산 농가 등의 매출 부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법을 섣불리 손대는 것은 법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숱한 부작용에도 이 법을 시행한 것은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일시적인 부작용과 혼란을 이유로 법을 완화하면 법 자체를 유명무실한 상태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고작 몇 달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법을 고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불경기와 경제정책 실패를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한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김영란법을 핑계로 대인 접촉이나 선물 등을 기피하거나 법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회 풍토가 더 문제다. 정부는 개정을 능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국민 홍보 및 법 운용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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