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니어문학상] 일의 의미 -이병식

2016년 수필 부문 우수상

IMF 한파는 나라를 온통 구조조정의 물결에 휘말리게 했다. 나는 그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다녔었다. 공기업에도 구조조정의 파도는 높았고, 나는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했다. 나는 그때 일이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일이 없다는 것은 곧 삶이 급전직하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그만 일을 시작했다. 어둑새벽의 문을 내가 여는 듯 눈 비비며 나갔다. 그러나 새벽은 이미 열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어둠을 걷어 내며 서성이는 노인들이 보였다. 남자들은 자전거를, 여자들은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종이 상자를 찾고 있었다. 혹한의 겨울에도 이들은 직업인 양 같은 일을 했다. 허리 구부린 채 밭은기침을 땅바닥으로 쏟아내며 허기진 걸음을 하는 노파를 만날 때는 가슴이 찡했다. 일에 무게가 있는 것일까. 버려진 종이만큼이나 이들이 하는 일이 가볍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들은 이 시대 가난한 노인들의 전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방송에서는 늘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내일은 날씨가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처럼 쉽게 반복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영세 자영업들이 숙살된 풀같이 그렇게 말라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하던 일도 가뭄에 무논 마르듯 그렇게 말라버렸다. 다시 어떤 일이라도 찾아야만 했다. 얼마 동안을 쉬다가 조그만 아파트의 경비 자리를 얻었다.

소개받은 곳은 규모가 작은 한 동짜리 저층 아파트였다. 상가까지 다 해도 오십여 가구밖에 되지 않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올라가는 아파트 빌딩 숲에 숨어 있는, 손질이 필요한 고택 같았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그래도 어깨 들썩하며 으스대었을 텐데, 변해가는 세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진 듯한 모습 같아 안쓰러웠다. 전체 면적이 작으니 재개발도 쉽지 않았으리라.

경비가 하는 일은 다양했다. 먼저 새벽에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간 음식물 쓰레기통을 청소하여 바로 놓아야 했고, 재활용품을 분리해서 수거하고, 다음에 아파트 주위 청소도 해야 했다. 아파트 규모가 작으니 환경미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장은 회갑이 지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고물 수집을 직업처럼 하고 있었다. 폐지를 비롯하여 병, 캔, 옷가지, 철, 알루미늄 등 모든 것을 다 수거해 왔다. 아파트의 창고 한 칸은 온통 그녀가 모아온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자석을 이용해 철과 비철을 구분하고, 쇠톱으로 자르기도 하고, 큰 물건은 망치로 때려 부수어 적당한 크기로 만들기도 했다. 억척스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전문가를 보는 듯 신기했다.

그녀는 나에게도 폐지 줍는 일을 하라고 했다. 아파트에서 나오는 폐지를 분리하고 정리하는 일이야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생뚱맞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버려진 포장 상자가 많이 나온다며, 점심시간을 이용해 폐지를 수집해 오라는 것이었다. 움직이면 한 푼이라도 돈이 되는데, 앉아 있으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하면서 말이다. 적은 월급을 보충할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빈둥거리는 내 휴대폰을 울려주는 것은 거의 회장의 호출이었다. 빈 상자가 많이 나왔는데 혼자 가져갈 수 없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아파트 밖에서 폐지 모으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소리 높여 거절했는데도 빈 상자만 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대곤 했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알리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갔지만,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용돈이라도 얻은 어린아이같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좋아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우리는 횡재라도 한 듯 양손에 상자 하나씩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폐지 줍는 일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파트 앞에서는 오 층 높이의 상가 건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어느 날 소장이 찾아왔다. 작업장을 정리했으니 고철 같은 폐자재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회장은 기쁨이 넘쳐나는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동업하자는 무언의 눈짓이었다. 고철은 무겁고 거친 쇠붙이가 아닌가. 거절하기도 난감했다. 내가 못 하겠다고 하면 고철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게 뻔했다. 짐 손수레를 덜커덩거리며 회장 뒤를 따라갔다.

철근 쪼가리와 비계를 묶었던 반생 철사 쪼가리들이 제법 많았다. 마대에 담아놓기는 했지만, 삐죽삐죽 거칠게 마대를 뚫고 나온 철사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옷이 찢기거나 몸에 상처가 날 수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거나 옷이 찢어지거나 하면 안 하니만 못한 장사다. 장미꽃을 꺾으려다 손가락에 가시만 박히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어디 있느냐고 일갈하는 듯해 마음이 짠했다. 어린아이 달래듯, 살살 달래며 마대를 하나하나 옮겼다. 퇴근 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일을 다 끝냈다. 창고는 거칠게 쌓인 고철로 가득하였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던가. 고물이라도 창고에 가득 채우니 마음도 덩달아 그득해졌다.

거친 고철 더미를 창고에 쌓아놓을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 날 고물상에서 물건을 실으러 왔다. 물건이 나갈 때는 고물상 주인이 알아서 다 실어갔기에 힘들지 않았다. 회장이 따라가서 계량하고 그 값을 받아왔다. 폐자재값이 많이 떨어져 값 좋던 시절의 반도 안 된다며 아쉬움을 토로할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 돈으로 소장을 불러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밥상에는 비싸지 않은 대중 음식이 놓여 있었지만, 그 위에는 따스한 정감이 너울거렸다. 회장이 나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거친 손마디의 촉감과 다른 어떤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였다. 나는 밥 먹었으면 되었다고 사양했지만, 기어이 나의 몫이라며 챙겨주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모아 두었던 폐지값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돈은 내가 폐지 모아서 얻은 첫 수입이었다. 그때, 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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