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로벌 취·창업서 미래를 찾다] 현지 창업자들이 말하는 '미국 창업'

"투자 조건은 딱 한가지, 아이디어"

플러그앤플레이 건물 모습.
플러그앤플레이 건물 모습.

'창업 생태계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실리콘밸리'.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산타클라라시(市) 등 여러 도시에 걸쳐 있는 거대한 벤처기업 밀집지역으로, 대구경북 출신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이 창업과 씨름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투자자가 '돈이 되는' 창업 아이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들의 전언. 용기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도전하라는 것이다.

◆마인드부터 세계화해야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미국으로 건너온 이종목(53) 씨. 그는 미국의 한 반도체업체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조그마한 반도체 관련 회사를 창업했고 현재 재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창업을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지만 한국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수익성만 난다면 투자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금융, 보안,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미국에 와 2011년부터 반도체 컨설팅업을 하는 박영은(41'여) 씨 또한 "한국식 아이디어는 글로벌 시장에서 잘 먹히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충분히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너무 첨단산업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미국에서는 의외로 3D 업종에 아이디어를 접목한 창업이 성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청년이 잔디 깎는 것을 네트워크화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수영장 관리나 크리스마스트리를 세팅해 주는 것도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 IT 분야 창업을 계획하고 왔다가 다른 분야로 창업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대구보건대를 졸업하고 2004년 미국으로 건너와 2007년부터 북버지니아주 애쉬번에서 치과기공소를 운영하는 주경삼(51) 씨도 "전통적 한국식 아이템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한인들은 손놀림이 좋아 한국식에다 현지화한 미용이나 네일아트, 애견 관리 등이 유망할 수 있다. 유타주에서 한국식 음식을 컵밥에 적용한 푸드트럭을 창업해 성공한 젊은이들이 현지 한인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개월 전에 미국에서 반도체업체를 창업한 상신균(57) 씨는 "한국은 창업할 때 조건과 성공 기간 등을 따지지만 미국은 아이디어를 따진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 창업해 미국에 진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고 말했다.

◆파트너십은 필수 조건

사이먼 리(54) 씨는 한때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온 뒤 현재 'PhysioCue' 대표로 있다. 그는 좋은 사업 아이템을 키워서 되파는 이른바 '연쇄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6개 업체를 이런 식으로 매각한 경력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파트너십 형성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미국 창업에서는 파트너를 얼마나 잘 만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많은 한국 청년이 기대를 품고 실리콘밸리에 오는데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 아무리 투자자가 많아도 3개월 만에 투자자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 파트너십을 잘 형성하는 데 큰 비중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곳 투자자들은 창업 가치를 따질 때 일반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30% 정도 본다. 이 때문에 발품을 많이 팔면서 멘토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분에 집착하지 말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창업할 때 공장을 세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리 씨는 "제조에 손을 대면 수익을 내기까지 고통스럽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제품을 만들어주는 회사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아이디어로 제품 제작을 의뢰하면 된다"고 했다.

◆철저한 준비로 도전해야

창업 선배들은 아이디어만 믿고 미국 창업에 도전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고 했다. 당장의 창업보다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을 경험하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창업에서도 '인턴'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배낭여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미국을 찾아 세계 곳곳에서 온 창업 예비자들과 투자자들을 만나면서 창업을 위한 사전 경험을 충분히 해야 한다. 미국 대기업에도 한국인이 더러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놓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 씨는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체류 문제 등 걸림돌이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마스터플랜을 짜는 준비가 필요하다. 최소 3년 이상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보다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과를 볼 수 있고 기회도 많다고 했다.

창업 선배들은 미국에서는 창업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한 번 실패해도 다시 투자를 하는 등 언제든지 재기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나쁜 의도로 투자금을 버린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노력에 따라 투자자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구조다"고 말했다. 리 씨 또한 "미국에서는 보통 투자자가 초기 주식 가치의 3~4배 정도를 기대하고 투자한다. 하지만 창업자의 마인드와 창업 아이템의 사업화 등만 좋다면 투자자는 모이게 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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