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서려면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개인 능력보다 집단 혁신역량 강화

다양성 부족하면 생산성 병목 현상

기술변화는 소득 불평등 심화시켜

시장경제 활성화로 혁신제도화를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호무역 장벽이 날로 높아지고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어 원대한 새해 포부는 차치하더라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년 초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고 이세돌'알파고 간 대국이 이어지면서 인공지능 등 신기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정부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올해 핵심 국정과제로 꼽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의 편승 여부는 우리 경제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고 잘만 하면 생산성 향상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높은 관심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관심이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만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가 혁신을 꿈꾸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은 한계비용이 낮은 연계와 융합에 기초하고 있어 승자독식 경향을 강화시킬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들보다 잘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필자는 혁신의 제도화(institutio nalization)가 시급하다고 본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의 혁신이 소수 기업가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 평가한 우리나라의 혁신역량은 140개국 중 19위로 준수한 편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 1위의 연구개발비 투자비중(GDP 대비)이 가져온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투자 규모는 크지만 간접비 비중이 높아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대기업 편중도 심하다. 게다가 재산권 보호, 부패 정도 등 혁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도들이 국제비교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집중투자를 통해 혁신을 주도한 기업가의 개인 능력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 능력에 의존한 혁신전략은 성공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고 빠른 기술 변화로 실패 시 시스템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에 경제 구성원 모두의 집단 역량에 바탕을 둔 혁신체제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혁신 부문의 다양성 결여에 있다. 혁신 부문의 다양성은 경제 전반에 걸쳐 혁신이 고루 이루어질 때 완성된다. 혁신 부문의 다양성 결여 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정체될 수 있음은 2005년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나타난 생산성 향상 둔화 현상이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 MIT 교수진은 최근 연구에서 혁신이 ICT 부문에 국한됨에 따라 생산에 투입되는 일부 요소의 낮은 생산성이 병목 역할을 한 것으로 진단하였다. OECD가 회원국들에게 혁신의 확산을 통해 기술 선도 기업과 여타 기업 간 생산성 격차를 줄일 것을 주문한 이유다.

마지막 이유는 경제적 소외계층을 포용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기술 변화는 기술 유무에 따른 임금 차등과 일자리 대체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4차 산업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중위권에 있어 아직 심각하지 않지만 보조금이나 직접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정도가 하위에 머물고 있어 기술혁신 과정에서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소득 불평등 심화는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고 경제성장 자체를 저해할 수 있어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혁신의 제도화는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혁신의 원천인 창조적 파괴가 가능하도록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데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선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는 동시에 재산권 보호와 공정거래와 관련된 법 집행을 엄정히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하여 조직 구성원 모두의 주도적 행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구조와 문화를 개선하여 혁신 친화적 조직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하겠다. 또한 소외계층을 포용하는 체제 구축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에 관한 논의도 가급적 빨리 시작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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