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정치, 혐오하기보다 감별해야

변화를 갈망하는 상황에서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펼쳐지는 몇 가지 장면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탄핵 정국이라는 비상시국을 맞아 정치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를 여지없이 깨트린다. 우선,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 간의 갈등이 볼썽사납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매국 행위'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의 비문 진영은 야권 대선 후보 선두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친문 진영에 나란히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이러한 정치 대부분은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다. 인명진과 서청원의 갈등은 친박의 무책임한 철면피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쪼그라든 새누리당은 생명을 다할 위기에 처했으나 '친박 핵심 탈당'이라는 인명진의 최소한 조치로 연명 내지는 소생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서청원이 막무가내로 버티기만 한다면 새누리당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정치인들은 탄핵 정국에서 극도로 후안무치한 민낯을 보였고 서청원의 뻔뻔함 역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유승민의 비난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사드 배치 결정으로 꼬인 한'중 관계를 풀려는 노력을 '매국 행위'라고 규정한 것은 지나치다. 사드 배치의 안보적 효율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며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유승민이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만이 정답이거나 해법은 아니다. 유승민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야당 의원들의 활동에 대해 감정적인 언사를 퍼붓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보수의 길을 주창하는 그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지지층 사이에서 일말의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문재인을 공격하고 더불어민주당의 다른 대선 주자들과 비문 진영이 문재인을 겨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통령 선거가 이른 시기에 닥침에 따라 벼렀던 칼을 꺼낼 때가 됐다. 그러나 일련의 흐름이 정치 철학이나 가치에 관계없이 반기문이라는 새로운 유력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제3지대'라는 이합집산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로지 정권 잡기에 혈안이 돼 정권을 잡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식의 표현이 바로 그렇다. '친문 패권'은 있지도 않고 반대 세력이 덧씌워 만든 가공의 프레임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기문은 아주 유명한 인물이지만 평생 외교관이었던 그가 정치 지도자의 자질을 지녔는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대선 주자로 떠오른 인물을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진지한 정치적 고민 없이 하는 것은 이미 실패한 전철을 다시 밟는 길이기도 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내 이루지 못한 '국민 통합'의 역설적 성과를 이뤄냈다. 국민이 정치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끼면서 정치 참여 의식을 높이고 정치인의 자질을 살피게 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했던 20대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졌다. 과거에 막연하게 만연한 정치 혐오에 휩싸여 선거 후보들을 찬찬히 살피지 않고 화려한 이력이나 지연, 이미지에 기대어 투표하다가 저질 정치인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이 걸어온 길을 제대로 살펴 날카롭게 평가함으로써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두려워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미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이 한순간에 몰락했고 윤상현, 김진태, 조원진, 김태흠, 이장우 등 맹목적 친박들의 정치 생명도 시한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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