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재를 겪은 대구 서문시장 4지구 피해 상인 지원을 위한 성금 모금 창구를 운영해온 (사)전국재해구호협회(구호협회)가 이달 안에 모금을 종료한다. 공식 모금은 이미 지난해에 끝났지만 기부 의사를 밝히는 단체가 끊이지 않아 마감까지 여유를 두기로 했다. 70억여원의 온정이 쌓였지만 배분을 둘러싼 잡음도 나오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성금 사용처를 4지구 피해 상인들로 한정할 것인지, 노점상 등을 포함해 폭넓게 적용할 것인지를 두고 이해 당사자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다. 성금 사용처는 '피해 상인들에게 개별 지급한다'는 원칙 외에 뚜렷한 기준이 없다. 특히 피해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상인들 간 신경전이 거세다.
◆개별 지급?
"4지구 상인들만." vs "타 지구'노점상들도 달라."
대구시에 따르면 성금 사용처는 대구시, 중구청, 구호협회, 피해상인들이 협의해 작성한 '배분계획서'를 토대로 구호협회 이사회 내 '배분심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결정된다.
4지구 상인들은 화재가 4지구에서 났으니 당연히 4지구 상인들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주변 상인들은 자신들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안은 '생계비 지원 범위'와 유사하게 4지구 상인들에게만 지급하는 안이다. 시와 구청은 지난해 12월 사업자 등록증, 관리비 납부내역서를 토대로 실사용자인 세입자 등 600여 가구에 총 5억여원의 생계비를 지급했다. 성금도 이런 식으로 지급한다면 점포당 1천만원 정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5년 2지구 화재 당시 모인 12억원의 성금도 2지구 상인 874명에게 각각 134만여원씩 지급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지급할 경우 주변 상가 상인들과 노점상들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특히 이번 화재로 영업을 못하고 있는 4지구 주변 노점상들은 무허가 업소라는 이유로 생계비 지원에서도 제외된 만큼 성금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서문시장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아온 노점상들은 전체 시장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해온 면이 있다"며 "노점상들이 구청에 어려움을 계속 호소하는 중이어서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결국 4지구 상인들이 키(Key'열쇠)를 쥐고 있다"며 "성금을 두고 구체적 논의 절차에 들어가면 시와 구청보다는 4지구 상인들의 결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4지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비대위 관계자는 "배분 문제는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시와 구체적으로 협의를 진행해가면서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시가 나서서 뚜렷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5년 5월 터진 '메르스 사태' 당시 모금한 성금 7천만원의 지원 범위를 두고 시는 '실명을 공개하며 피해를 호소했던 상가'로 성금 배분 기준을 설정한 바 있다. 시 관계자는 "12일부터 구호협회와 함께 실무자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며 "늦어도 2월 말까지 성금 배분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구민수 기자 msg@msnet.co.kr
◆다른 방법은 없나?
서문시장 화재 성금을 단순히 배분할 게 아니라 화재 예방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5일 '서문시장 소방안전 종합대책 공청회'를 열고 대형 화재 예방을 위한 각종 시설 확충 계획을 밝혔다. 종합대책에는 화재 감시시스템 구축, 소화전 증설 등 소방 인프라 확충과 함께 화재가 발생해도 크게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내부 방화구획 설치도 포함됐다. 서문시장 4지구 내부에 방화벽 등 방화구획이 없었던 탓에 불이 빠르게 번져 화재 피해가 커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가 기존 서문시장 건물에 맞는 방화구조물을 설치하는 데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 예산은 총 46억원. 건물 특성별로 방화셔터, 방화스크린 등을 설치할 경우 1지구 6억2천여만원, 2지구 20억8천여만원, 5지구 6억5천여만원, 동산상가 11억9천여만원 등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됐다. 새로 지어질 4지구까지 감안하면 방화구조물을 갖추는 데 50억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 하지만 화재감시센터 운영, 영상분석화재감시 시스템 구축, 고성능 펌프 소방차 배치 등 국비나 시비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화재 예방 대책들과 달리 방화구조물 설치는 상인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모인 성금을 화재 예방 차원에서 방화구조물 설치 등 화재 예방 자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시장 한 관계자는 "방화구조물 설치가 추진된다면 어차피 상인연합회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성금을 여기에 사용하자는 얘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화재 대응 인식 변화를 위해 성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방화벽은 물론 각종 소화'경보'피난설비를 갖추고 있는 전통시장들도 소화전이나 대피로에 물건을 쌓아두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홍균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상인들이 대형 화재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화재 예방을 철저히 하는 것이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2005년에는 어떻게 썼나?
2005년 서문시장 2지구 화재 때 모인 성금은 피해 상인들에게 균등 배분됐다. 당시 모금 창구 역할을 했던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2006년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전국에서 모인 성금은 총 12억원 규모였다. 그해 5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는 '서문시장 화재 피해 상인 지원성금 배분위원회'를 구성해 3일부터 12일까지 3차례 회의를 열었다.
배분위원회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회장이 배분위원장을 맡았고 2지구 층별 상인 대표 4명과 대구시'중구청 관계자, 변호사, 언론인, 중구의원 등 총 10명으로 구성됐다. 이동구 당시 배분위원장(현 수성대학교 이사장)은 "상인별 피해 정도에 차이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주는 게 바람직한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결론은 피해 상인 874명에게 각각 134만여원씩 나눠주는 균등 배분이었다. 당시 피해를 입었던 2지구 한 상인은 "층별 배분 등 여러 얘기가 나왔으나 이미 모두 불탄 상황에서 감정평가도 불가능한데 차등 분배는 말도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았다"며 "차등 분배 주장은 분란만 만들게 되니 균등 분배가 맞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급 대상은 사업자등록이 돼 있는 사람을 원칙으로 했지만, 피해 상인 상당수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상인회에서 실제 영업자로 인정하는 상인도 배분 대상에 포함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중구청 관계자는 "이번 4지구 성금 배분을 위해 2지구 사례를 참고하고 싶지만, 보관 의무가 없었던 탓에 그 당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배분위원회 회의록 등 상세 자료를 참고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영채 기자 ycpar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