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수길의 경북 장터 사람들] <2>상주 은척장터 생선장수 박 씨 할머니

"기다리는 노인들이 눈에 밟혀 장사 못 접겠어요"

은척장에서 생선장수로 40여 년을 살아온 박 씨(오른쪽) 할머니는 자신을 기다리는 시골 노인들이 눈에 밟혀 장사를 접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아래 사진은 이수길 작가
은척장에서 생선장수로 40여 년을 살아온 박 씨(오른쪽) 할머니는 자신을 기다리는 시골 노인들이 눈에 밟혀 장사를 접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아래 사진은 이수길 작가

장날 아침이면 장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터로 가는 모습은 물론이고 송아지 몰고 가는 사람, 돼지 새끼 한 마리, 닭 한 마리 품에 안고 장터로 팔러 나가는 모습이 아련하다. 전국 어디를 가든 눈 비비고 찾아봐도 접할 수 없는 시골장터 풍경이다. 시대의 흐름이 시골장터의 변화를 급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은척장도 예외는 아니다. 은척장은 1965년 처음 장이 서기 시작해 왕성함을 자랑했다. 장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장터도 요즘에는 쓸쓸함이 맴돌 뿐이다. 은척장에는 곡물전, 채소전, 생선전, 잡화전, 의류전 등 6명 정도의 옛 상인들만이 남아 장터를 지키고 있다. 은척장에 모이는 상인들의 연령대는 60대가 3명, 70대가 3명이다. 상인들이 점차 노령화되면서 장터도 문이 닫힐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은척장에서 생선장수로 40여 년을 살아온 박(75) 씨 할머니. 장날이면 노인들만 사는 시골장터에 생선을 가져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나온다. 장날 빠지면 노인 분들이 눈에 걸리고 마음이 불편해 장사를 접을 수가 없었다. 슬하에 4남매를 둔 박 씨는 생선장사로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다. 생선장수 장돌뱅이 생활로 억척스럽게 벌어 셋방살이를 면할 수 있었고 집 한 채를 마련했다. 40년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남은 건 자식들과 함께 먹고 살아오면서 장만한 집 한 채가 전부라고 한다. 박 씨 할머니는 점촌장, 은척장, 상주장 등을 돌며 생선을 팔아 살아 왔다.

요즘은 장사도 잘 안 되고 재료값은 올라 남는 게 예전처럼 많지가 않다. 생선은 여름에는 얼음이 없으면 장사를 못 한다. 저장성이 있어야 싱싱한 생선을 팔 수 있어 얼음이 아무리 비싸도 사지 않을 수 없다. 얼음 한 조각에 4천원 정도 하는데 생선을 팔면 얼음값이 더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은척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생선은 조기, 꽁치, 갈치, 고등어 등이다. 손님들이 잘 찾고 잘 나가는 생선은 항상 싱싱함을 유지하도록 신경을 쓴다. 초복, 중복, 말복에는 주민들이 편안하게 몸보신할 수 있도록 삼계탕용 닭을 들고 나와 팔기도 한다. 장터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지역 주민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제공해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