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대통령 떠나보내기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세계의 정세에 해박한 한 미국인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한반도 현황에 관한 의견을 풀어놓았다. 그는 "한국은 지금 대통령을 떠나보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비리와 관련된 대통령 행적에 대한 공정한 재판은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경제, 안보, 외교 등 각 분야에 걸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계속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지난해 한국은 작은 촛불의 화력을 모아 대통령 탄핵 추진이라는 놀라운 거사를 이끌어 내며 전 세계에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새해에도 세계의 언론들은 작년에 이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이와 관련된 정치 경제계 비리 의혹, 기록적인 촛불집회 현황, 김정은의 북핵 위협 등 어둡고 씁쓸한 기삿거리들로 한국에 관해 보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미사일을 만지작거리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김정은의 행보를 주시하며 한반도를 위험한 화약고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내의 골목 상권까지 침해하는 욕심을 보여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때도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기업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국위를 선양시키고 국익을 감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뉴욕 번화가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나가면 세계 유수 기업들의 화려한 옥외 광고로 밤도 대낮처럼 환하다. 그곳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련된 광고들이 번쩍이는 것을 보면 무척 자랑스럽다. 미국에서 한국산 제품은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점점 덧입혀지고 있으니 이 또한 한인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요즘 대기업들이 특검조사를 위해 줄소환을 당하고, 그들의 부정 청탁 정황이 포착되는 것은 기업 이미지에 상당히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비리와 연루된 기업과 손잡고 일하는 것은 외국 거래처들에게 상쾌한 일은 아닐 것이고, 이는 곧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큰 손실을 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뼈아픈 수술을 통해 정경 유착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거시적인 안목의 대기업다운 대기업으로 하루빨리 건강하게 변모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혁신의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도 오는 20일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끌어 온 오바마 대통령을 떠나보내게 된다. 새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을 맞아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를 폐지하는 것을 행정명령 1호로 발동한다고 알렸다. 오바마케어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기간 심혈을 기울인 최대 과업이었다. 트럼프는 오바마를 떠나보내며 그의 자취를 지워버리기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그의 이름이 걸려 있는 오바마케어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전 국민 의료복지정책인 오바마케어가 없어지면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될까 염려하는 서민들을 향해, 자신이 오바마보다 더 멋진 의료정책으로 국민들을 보살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랜다. 그래서인지 미국인들은 오바마케어가 없어져도 더 좋은 대안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오바마는 떠나보내지만 오바마 정부 아래서 누렸던 모든 혜택들까지 떠나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안심한다.

새해가 밝았다. 해가 떠오르면 촛불은 꺼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새벽은 먼 듯하다.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든 가여운 사람들을 향해, 촛불은 언제쯤 어떻게 꺼야 하며, 지금은 촛불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가 없다. 자신의 대권욕을 위해 촛불을 따라다니며 민심에 편승하거나 촛불을 부채질하는 손질이 바쁠 뿐이다. 촛불이 필요 없는 환한 세상을 만들어갈 깨끗한 지도자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대통령을 떠나보내기 위해 많은 것을 떠나보내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기 위해 국익을 꼼꼼히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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