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의 하나는 투표로 선출된 대표의 '부분적 독립성'이다. 대표는 뽑아준 사람의 뜻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 비준 논쟁 당시 제임스 매디슨 등 연방주의자의 표현을 빌리면 "선거권자의 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에게 봉사할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독립적 수탁자"가 대표라는 것이다.
이로부터 두 가지 제도가 확립됐다. 선거권자가 대표에게 지시를 내리는 '구속적 위임'과 지시를 거부한 대표의 '임의적 해임'의 금지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 때부터 제도화됐다. 혁명가들의 첫 번째 결정(1789년 9월)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구속적 위임'의 금지였다. 이 결정에 대해 혁명 기간이나 그 이후에 한 번도 이의가 제기된 적이 없다.
영국도 그랬다. 하원 의원은 특정 선거구가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지역구 유권자가 국회의원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건국 초기, 헌법 수정 조항에 유권자의 명령권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문제가 장기간 논의됐으나 결국 부결됐다.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코뮌은 코뮌 평의회 위원들에 대한 '상시적 해임'을 도입했지만 단명한 코뮌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이렇게 구속적 위임과 임의적 해임을 금지하는 배경 논리는 간단하다. 정부나 대표가 수많은 구체적 결정을 내려야 하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정치 사회적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속적 위임은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속적 위임이란 대표가 직면하게 될 문제를 유권자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원칙이 영국의 대의제에 대한 프랑스 계몽주의자 루소의 비판대로 유권자를 '노예'로 되돌린다는 점이다. "영국 인민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 선거 기간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국회의원 소환권이 없는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 신세다. 국회의원이 무능'무책임'부패해도 국민은 탄핵하지 못한다. 대통령도 부러워할 '무책임의 특권'이다. '바른정당'이 이런 무책임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약속은 여러 차례 나왔지만, 지금껏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이번에는 다를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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