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임자 정책 뒤집기 예사
국가 혁신의 전통 확보 어려워져
창조경제 예산 증액 대승적 합의
미래 동력으로 키울 선장 뽑기를
스웨덴에는 우리나라의 삼성 그룹과 같은 위상을 가진 재벌로 발렌베리 그룹이 있다. 이들은 스웨덴 2위 은행인 SEB와 유럽 최대 가전회사인 일렉트로룩스, 통신장비회사인 에릭슨 등 14개 대기업의 경영권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스웨덴 국내총생산의 30%, 주식 시가총액의 50%를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1856년 설립된 이후 5대째 가족경영을 해 온 발렌베리 그룹은 2대 크누트 회장이 전 재산을 투자해 설립한 재단을 통해 경영하고 있으며, 재단으로 들어오는 수익금의 80%를 스웨덴을 위해 재투자하는 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가족경영을 고수하면서도 이렇게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중심에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라"는 엄격한 후계자 선정의 기준과 절차가 있었다.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할 것,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금융 중심지에 진출할 것, 실무 경험을 쌓고 국제금융의 흐름을 익힐 것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고 검증된 두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이들은 협력과 견제의 역할을 하며 가문의 전통과 사명을 허물지 않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사업의 전통과 사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사례는 가족경영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현장을 견학하고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최고경영진부터 생산현장, 그리고 협력업체까지 어떻게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도요타의 철학과 시스템하에서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간 여러 명의 비가족 대표가 거쳐 갔고, 회사의 존립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도 있었다. 회사의 사명과 창업정신을 지키되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강화할 수 있는 적임자를 대표로 선출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전임자의 경영 방식과 프로그램을 뒤집기보다는 오히려 전통과 핵심 역량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도요타 경쟁력의 원천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경험하거나 지켜본 국내 대기업, 공공기관, 관료조직의 경우 새로 대표가 선임되면 상당수가 전임자들이 주력해온 혁신 활동과 사업을 버리고 자신의 업적을 위한 새로운 방식과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는 것과는 참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해 12월 국가 리더십의 위기 속에서 박근혜정부의 핵심 사업이었던 '창조경제'도 도마 위에 올라 2017년 예산 확보에 홍역을 치렀다. 여야 간의 첨예한 정치적 의견 대립이 있는 중에도 올해 창조경제 기반 조성 관련 사업에 지난해보다 50% 증가한 1천266억원을 편성하고, 특히 전국 17개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에 전년보다 48.3% 증가한 470억원을 배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창조경제 즉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국가 성장 동력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여야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큰 지원책이 된다. 이제 소극적 예산 다툼 수준에서 벗어나 창업 활성화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사업임을 여야 공동으로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사업을 꼭 성공시키기 위한 정책 대결과 범정파적 협력을 국민과 창업자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업적을 만들기 위해 전임자의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리더십이 탄탄히 선 속에서 창업자들과 교육기관, 지원기관, 동반성장을 주도할 기업들, 지방자치단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이 스스로 감당할 혁신을 주도해 갈 때 비로소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할과 위치가 확보될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과 도요타가 전통을 계승하고 스스로의 사명과 가치를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촛불 민심의 근간에는 내 입장이 아닌 국가 관점이 깔려 있고, 위정자는 국가와 국민 관점으로 일해 달라는 열망이 녹아 있다. 창조경제 예산을 놓고 여야가 보여준 모처럼의 대승적 합의는 이러한 국민들의 열망에 여야가 '열린 마음'으로 응답한 보기 드문 사례로 생각된다. 대한민국호의 다음 경영자는 '창조경제'로 명찰을 단 창업 활성화 정책을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처럼 묻어 버리지 않고 국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잘 키워나갈 '열린 경영'을 할 분으로 뽑을 수 있도록 우리 지혜의 촛불을 밝혀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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