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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醫窓] 노(老 ) 철학자의 건강비결

7080세대로 불리는 지금 50, 60대는 대학시절 '쎄시봉'으로 불리는 통기타 음악에 심취했다. 이청준, 이문열, 조세희, 최인호 등의 소설을 즐겨 읽었으며, 당대 석학이던 철학교수 3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중 한 명은 안병욱 숭실대 교수다. 안 교수는 운집한 청중들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강연으로 이름을 날렸다. 고등학생 시절, 사흘간 안 교수의 강연을 듣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안 교수는 '산에 나무를 심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클라크 교수의 명언과, '무실역행'(務實力行)으로 대표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철학을 전파하며 가슴을 뛰게 했다.

다른 한 사람은 김태길 서울대 교수. 김 교수는 '수필문학'에 품격있는 소박한 글들을 많이 발표했다. 그의 글들은 수필문학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솔직담백하면서 선비적이었다. 1978년 수필문학에 발표된 '좋은 글'이라는 글에는 고매한 인격이 구절구절 배어 있었다. 언젠가 '정열과 지성' 이라는 김 교수의 신간을 사서 읽었는데, 제목이 글의 내용이나 김 교수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제목을 그렇게 붙인 연유가 궁금하다'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원래 제목은 '마음의 그림자'였는데 판권을 인수한 출판사가 자극적인 제목으로 바꿔달라고 간청해 어쩔 수 없었다"는 김 교수의 답장이 돌아왔다. 편지의 필체도 선비 모습 그대로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김형석 연세대 교수다. 당시 김 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문고판 수필집은 대학생들 사이에 베스트셀러였다. 김 교수의 글은 율법주의를 배제한 합리적 기독교 신앙관을 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1920년생으로 동갑이었다. 세 명 모두 강연과 글을 통해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했고, 장수했다. 김태길 교수는 88세, 안병욱 교수는 93세에 작고했지만 김형석 교수는 97세인 지금도 건강하게 집필하며 강연도 다닌다.

지난해에 발표한 김형석 교수의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를 최근 읽었다. 인생을 관조하고 있는 노 철학자의 지혜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어떻게 그 나이까지 정신적·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지 비결이 궁금했다. 김 교수는 예순을 넘어서부터 가벼운 산책과 수영을 즐겼다고 했다. 또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는 동안은 그 일 때문에 또 일을 성취해 나가는 기간에, 어떤 인간적 에너지같은 것이 작용해 건강을 돕지 않았겠는가"라고 했다. 과학보다는 믿음이었지만 같은 믿음인 터라 '박장'(拍掌)했다. 구글의 행복전도사 차드멩탄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습관이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우리 시대의 철학자 세 명도 욕심은 멀리하고 자연과 일을 사랑하며,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바라며 열정적으로 살았기에 장수가 가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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