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백 앞의 소녀상

'복지부동(伏地不動), 복지안동(伏地眼動'땅에 납작 엎드려 눈알만 굴린다), 낙지부동(낙지처럼 뻘 속에 숨는다), 신토불이(身土不二'몸과 땅은 하나)….'

공무원의 보신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전에 감사원이 '공무원의 무사안일'소극적 업무처리' 실태를 감사했는데, 그 결과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유형별로 '행정 방치'지연' '적당주의' '선례 답습' '법규 빙자' '업무 전가' 순이었다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례였다.

공무원의 보신주의는 직업 특성인 만큼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그렇지만, 시민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까지 방해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구에도 전형적인 사례가 있는데, 그 정도가 심각하다. 대구평화의소녀상건립범시민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중구 동성로 대백 앞 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중구청이 끝까지 반대하고 있다.

추진위는 장소의 상징성 때문에 대백 앞 광장을 고수하고 있고, 중구청은 '도로법 위반' '다른 단체와의 형평성' '시민 불편 초래' 등의 이유를 들어 불가 방침을 밝혔다. 지난 13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윤순영 중구청장이 마주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자체장과 행정기관이 '법규 위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불가 방침을 밝힌 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 달리 말하면 '골치 아프고 시끄러운 일은 피하고 싶다'는 뜻이다. 중구청 입장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면 논란이 일 수 있으니 사소한 위험이라도 자초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 것 같다.

부산은 지난해 말 소녀상을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해 한일 간 외교 마찰까지 감수하는 강단을 보였는데, 대구는 자그마한 부담조차 짊어지길 싫어한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를 숱하게 배출한 대구경북인의 기상과 기백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희생과 존엄을 기억하고,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당연히 대구에서 가장 많은 시민이 모이는 대백 앞에 설치해야 한다. 중구청이 대안으로 제시한 쌈지공원, 국채보상공원 등에 설치하는 문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무슨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소녀상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세울 수는 없다. 중구청이 계속 '평화의 소녀상'을 냉대(?)하다간 '영혼 없는 공무원'이 아니라 '비애국적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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