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공산권 국가 최고 권력자의 직함 중 가장 이채로운 것은 '서기장' '제1비서' '총비서' 등이다. 스탈린의 직함부터 '서기장'(General Secretary)이었다. 이 직함은 스탈린 사후 말렌코프 집권 때와 뒤를 이은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펴면서 '제1서기'로 변경한 때를 제외하고 고르바초프 때까지 계속 사용됐다.
옛 동독에서도 발터 울브리히트, 에리히 호네커 등 최고 권력자를 '당비서' '당서기관'(Generalsekretar, 게네날제크레테어)이라고 불렀으며, 루마니아나 알바니아 등 다른 동구 사회주의 국가도 표기는 차이가 있지만, 최고 권력자의 직함은 같았다. 그 이유는 공산당의 최고 직위가 곧 최고 권력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서기장과 같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최고 권력이다. 김일성은 총비서와 국가주석을 겸임했다. 그의 사후 김정일이 주석직을 폐지함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헌법상의 국가수반이 됐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국가수반일 뿐 최고 권력자는 여전히 총비서다.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신설한 '제1비서'에 올랐다. 그러다 지난해 제1비서를 '당 위원장'으로 바꿨다. 이를 포함해 김정은의 공식 직함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9개나 된다.
시쳇말로 '폼 나는' 직함도 많은데 하필이면 어중간한 중간 사무관료를 떠올리게 하는 '서기'나 '비서'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이유가 의아하지만 '서기' '비서'라는 단어의 유래를 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Secretary'는 '새긴다' '긁는다' '글씨를 쓴다'는 뜻의 'script'에서 파생됐다. 인구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근대 이전에는 글씨를 쓰는 것, 곧 문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권력이었다. 이렇게 해서 '비서'는 단순한 사무 보조원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이란 뜻을 갖게 됐고 결국에는 '최고 권력'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김정은에게는 비선 실세 라인과 언론에 공개되는 라인이 따로 있다"고 폭로했다. 북한 주민이 잘 모르는 김정은의 서기실이 모든 부서에서 올라오는 정책을 김정은에게 전달하고 지시를 하달한다는 것이다. 당 중앙위원회 서기국을 통해 국민을 감시'통제'관리했던 스탈린의 권력 운용 방식의 판박이다. 공산체제는 이런 억압적 메커니즘으로밖에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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