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막도장-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최우수상

◆막도장

김우진

백내장을 앓고 있는 돋보기 안으로 글자가 들어왔다 한 자 한 자 각을 세운 글자들은 나무의 심장을 터 주었다 평생 도장을 팠지만 한 번도 찍어보지 못한 채 도장 속에 묻혀버린 아버지

조각칼에 밀려나는 나무의 속살은 아버지의 지문이었다 십분 만에 한 생애를 파헤쳤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무의 그늘을 가져보지 못했다 도장 속 자음과 모음이라는 세간살이가 전부였다

함부로 도장을 찍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망각한 연대보증서 나는 평생 도장에 쫓겨 다니다가 오늘 겨우 전세계약서에 반백의 물푸레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네 식구가 발 뻗고 잘 방 한 칸을 막도장이 내주었다 내 손에 파랗게 물이 올랐으니 마침내 나는 그늘을 가지게 된 셈이다

주머니 속에 방 한 칸을 꼬옥 넣고 다닌다

◆약력

1946년 전남 광양 출생

경기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제10회 수주문학상 수상

2008년 제6회 전국문화인창작시 대상(국회의장상)

201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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