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는 방문 밖에서 올려야
인사말은 어르신 덕담 후에
밤 깎고 상 차리기는 남자 몫
차례 지낼 때 여자도 절해야
'예전에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하고 말을 꺼내는 순간 당신은 '옛날 사람'이 돼 버린다. 젊은이들 중에서는 아예 귀를 막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지겹게 들어온 얘기라 다음 레퍼토리를 예상할 수 있기도 하고, '예전'이나 '요즘'이란 말 자체가 세대를 나누는 벽처럼 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핵가족화가 더욱 심화되면서 옛날 얘기를 나누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조부모와 한집에서 사는 경우가 드물고 아빠는 회사에서 하루를 보내고 자녀는 학원 다니느라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줄었다.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격변(激變)의 과도기를 보낸 한반도는 너무나 다른 배경의 노인세대, 아버지세대, 그리고 젊은이들이 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집안 어른들과 아이들이 지혜를 나누는 밥상머리 예절이 더욱더 필요해진다.
우리 조상들은 시대가 바뀌고 새로움이 넘쳐날수록 옛것을 알면서 새로운 것을 더해야만 혼란과 갈등이 줄어든다고 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대구향교를 찾아 우리 조상들이 밥상머리에서 가르치던 여러 가지 예절과 풍습에 대해 들어봤다.
◆"삼촌~"은 잘못된 표현이다?
부모, 삼촌, 당숙, 백부 등 친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는 종류도 많고 복잡하다. 전재운 대구향교 의전국장은 친척을 직접 부르거나 가리킬 때 표현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호칭(呼稱)은 한자 뜻 그대로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단어다. 예를 들면 '아버지' '큰아버지' '이모' 같은 것들이 호칭이다.
전 국장은 "사람들이 특히 작은아버지를 부를 때 '삼촌'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건 잘못된 표현이다"고 말한다. 삼촌은 단순히 나와 아버지 형제의 촌수를 나타내는 거지 호칭도 지칭도 아니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으로 불러야 한다. 이모와 고모는 호칭과 지칭이 같은 경우다.
그렇다면 지칭(指稱)은 무엇일까? 지칭도 한자로 의미를 풀면 누군가를 가리킬 때 쓰는 이름이다. 지칭으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뜻하는 '조부모', 아버지의 사촌을 가리키는 '종숙부모(당숙)' 등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형제는 '백숙(伯叔)부모', 사촌의 지칭은 '종형제'가 된다.
(호칭과 지칭 표 참조)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설날
세배를 할 때도 올바른 방법이 있다. 첫째, 방문 밖에서 절을 드릴 것. 경상도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문하배(門下拜)라고 하여 웃어른께 절을 올릴 때는 문밖에서 하는 것이 예의다. 특히 부모님은 집에서의 임금, 즉 가군(家君)이라고 하여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렸다.
많은 사람들이 절하기 전이나 절을 하면서 "건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말을 곁들이는 것을 종종 본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예(禮)다. 제대로 절을 하는 방법은 세배를 드린 후 어른이 덕담을 건넨 후에 인사말을 드리는 것이 순서다.
덕담을 전하는 어르신들도 꼭 참고해 둘 만한 좋은 예법이 있다. 세배를 받은 어른들은 새해를 맞아 자식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덕담을 건넨다. '올해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 꼭 결혼을 하라'거나 '사업이 더 번창하길 빈다'라는 내용으로 시제를 미래형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자식들에게 전하는 덕담을 가정(실현)형으로 표현했다. "사업에 성공했구나" "자식이 하나 더 생겨 다복하게 되어 좋다"는 식으로 새해 소망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덕담을 전했다.
◆제사 장보기는 남녀가 함께 한다?
아직까지 명절증후군은 여자들의 몫으로 여겨진다. 남자들에게 명절증후군은 기껏 해봤자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오랜만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 전통 예법을 살펴보면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분담해 온 사실이 있다.
제사 때는 각자의 역할이 더욱 분명하다. 조상들도 제사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자가 전담했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식재료를 골랐고 밤을 깎는 등 재료를 다듬고 제사상 음식을 차곡차곡 쌓는 일은 남자들이 전담했다.
제사를 드리면서 절을 할 때도 아들과 며느리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종손(맏아들)이 초헌(初獻·제사 때 첫 번째로 잔을 올리는 일)을 하고 나면 종부인 맏며느리가 아헌(亞獻·두 번째로 잔을 올리는 것)을 한다. 뒤이어 종헌(終獻·세 번째로 잔을 올리는 것)은 딸이나 사위가 맡게 된다.
제사 때 여자들은 절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하나? 우리 조상들 예법을 보면 여자도 절을 하고 절을 하는 정확한 방법이 나와 있다. 제사 때 종손(남자)은 2번 절을 하고 종부(여자)는 4번 한다. 이는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함인데 혼례식에서 남자가 1번, 여자가 2번 절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망자에게 절을 올릴 때는 경사 때 절을 하는 2배수로 남녀가 2번과 4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절할 때 가부좌를 틀어야 하는지 무릎을 굽히고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형식은 없다. 치마를 입고 있을 때는 가부좌를 틀고 절하지만 바지를 입고 있을 때는 무릎을 꿇고 절하는 편이 보기 흉하지 않다고 한다.
전재운 대구향교 의전국장은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달하더라도 조상의 뿌리는 알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국장은 "역사와 같은 겁니다. 우리 조상은 '온고지신'이라고 해서 항상 옛것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것을 더해 지혜를 쌓고 더 좋은 삶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사람은 바뀌더라도 그 뿌리와 근본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이번 설날에는 어르신들의 삶에 대해 들어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가족이 모인 의미가 더욱 빛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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