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한 주의 한 권'진행 실패기

지난 한 해 동안 지역의 라디오 방송에서 '한 주의 한 권'이라는 제목의 책 소개 코너를 진행했다. 매주 소개할 책을 정하고, 쫓기듯이 읽어 내고, 대본을 준비하고, 방송국에 가서 진행을 했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도 책을 소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방송에서 내가 책을 소개하는 방식은 줄거리 정리에 가까웠다. 부끄럽다. 생방송이었지만 사회자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내가 사전에 작성한 대본을 따라 읽는 것이라 생생한 감상을 전달하기 어려웠고, 13분 내에 책 한 권을 소개해야 해 깊이 있는 전달도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방송을 하는 동안 내가 소개한 책을 읽었다는 사람은커녕 내 방송을 들었다는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만약 책 소개라는 것이 어떤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면, 나는 성혼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결혼정보회사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소개하는 책을 사람들이 꼭 읽을 필요는 없다. 사실 나조차 누가 소개한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내가 읽겠다고 쌓아둔 책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 남이 소개한 책까지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어야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방송을 해나갈수록 책을 소개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책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일까? 책 소개 방송은 꼭 필요한 것일까? 왜 라디오 작가는 내가 선정한 책을 매번 무겁다고 하는 것일까? 출연료라도 많았다면 어쩌면 이런 생각을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시인 서동욱이 쓴 '곡면의 힘'을 읽었다. 이 책에서 시인은 "시 쓰기란, 홀로 훈련하는 운동선수가 오직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듯하지만, 기실 자신의 의식과 상관없이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듯이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썼다. 투수가 훈련에서 수백 개째 혼자 공을 던지며 오직 자신의 구질만 의식하지만, 다른 한편 자신의 공을 쳐낼 타자를 향해 열려 있듯이 시 역시 그렇게 쓰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내가 책 소개에 실패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열림이 없었다. 언제나 내 취향만이 우선이었다. 책 선정을 다양하게 해달라는 작가의 주문에 나는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책 소개는 조금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시인이 공동체를 향해, 투수가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것과는 달리 나는 어쩌면 내 방송을 들어줄 청취자들을 향해서도 열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다시 책 소개를 하게 된다면, 이전보다 조금은 더 성혼가능성 높은 결혼정보회사가 될 수 있을까? 투수가 공을 던지듯, 이제라도 그렇게 글을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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