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5>시계수리 명장 이희영

안 고친 시계 있어도, 못 고친 시계 없어…전국서 수리 요청

3부자(왼쪽부터 큰아들 윤호 씨, 작은아들 인호 씨, 이희영 명장)
'안 고친 시계는 있어도, 못 고친 시계는 없다'고 말하는 시계수리 부문 이희영 명장.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3부자(왼쪽부터 큰아들 윤호 씨, 작은아들 인호 씨, 이희영 명장)

시계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은 100여 개 정도.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시계에는 130~150개, 많게는 200여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조그마한 시계에 이렇듯 많은 부품이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에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려면 정확하고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 40년 넘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부품들로 이뤄진 시계 속 세상을 탐험하며 살아온 이희영(62) 선생은 '시계수리 명장'이다. 그는 오늘도 고장 나거나 멈춰선 시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고장 난 시계 새 생명 얻을 때 보람"

홈플러스 성서점(대구 달서구 용산동) 지하 1층 한편에 자리한 명품 시계 전문점 '스위스'. 이희영 명장은 그곳에서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한다. 그는 "수리가 불가능해 보였던 시계가 내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경북 의성군 다인 출신인 이 명장은 어릴 때부터 기계를 뜯어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 면 소재지에 위치한 시계방에서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게 됐는데, 너무 신기했다. '이것이다' 싶었다. 그게 시계수리 인생 45년이 시작됐던 거죠."

이 명장은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 시계학원에서 이론과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취직했다. "당시에는 제가 못 고치는 시계가 거의 없었어요. 월급을 받으며 기사로 일을 하다 보니 내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고향으로 내려와 시계점을 차렸다. 그의 잠재된 능력은 이후 빛을 발했다. 1976년 21세에 시계수리 1급 기능사 자격증을 거머쥐었고, 제11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시계수리 부문 금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시계수리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되었다. 2002년 홈플러스 성서점 오픈 때 입점해 지금까지 시계수리 및 판매를 하고 있다.

이 명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1980년대 전자식 시계가 유행하면서 기계식 시계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식 시계 붐이 식으면서 오히려 기계식 고가 시계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도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못 고치는 시계 없어"

이 명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안 고친 시계는 있어도, 못 고친 시계는 없다"고 말한다. 경주와 포항은 물론 전국에서 수리를 의뢰해 온단다. 그래서 아직도 손님이 시계 수리를 요청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45년째 시계를 고치고 있지만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계를 대한다"고 했다.

이 명장은 시계를 고치는 일이 쉼 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 지금도 여전히 재밌다고 했다. 이 명장에게도 가끔은 고칠 수 없는 시계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분해하기에 앞서 시계에 대해 공부를 한다.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등 충분한 공부한 뒤 비로소 분해를 시작한다. 보통 있는 부품으로 수리를 하지만 부품 구하기 어려우면 직접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오랜 세월 고치지 못한 시계가 없다는 것은 이 명장이 가진 자부심 중 하나다. 안 고친 시계는 간혹 있단다. "가격 때문에 손님이 수리를 거부한 것이지 내가 안 고친 것은 아니다"며 웃는다.

◆명품 시계는 명품답게 관리해야

손님이 들고 오는 시계는 대부분 기계식이다. 기계식 시계란 배터리 없이 태엽의 힘으로 바늘이 움직이는 시계를 말한다. 그러나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는 저렴한 전자식 시계에 못 미친다. 따라서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시계가 멈추기 때문에 자주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값비싼 명품 시계는 대부분 기계식이다. 이 명장은 기계식 시계는 영원하다고 했다.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묻자 "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묵직한 무게감과 물 흐르는 듯한 초침의 움직임"을 꼽았다. 그리고 명품 시계는 정밀한 부품이 작은 크기에 담겨 손목 위에서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것과 여성의 명품 가방처럼 과시욕을 채워줄 수 있는 등 시계 마니아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요소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만약 기계식 시계가 편의성 때문에 전자식 시계에 밀려야 한다면 벌써 사라졌어야 했지만 기계식 시계만이 가진 매력, 전통을 추구하는 소비계층이 있어 독보적인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시계수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사람 손으로 만져야 하는 미세하고 특화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양길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가의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요는 더 늘고 있다"고 했다.

이 명장은 명품 시계는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품은 명품답게 사용해야 명품의 가치를 오래 느낄 수 있고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것. "대부분 명품 시계는 수분, 땀, 먼지 등 외부의 영향을 받기 쉽고 충격에 약하다. 또 각 부품에 주유 된 윤활유가 마르면 시간 정확도가 떨어지고 부품의 마모가 급속히 진행되므로 고장이 발생한다"며 " 가끔 전문 수리인에게 맡겨 분해, 세척, 주유를 해주면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명장은 삶을 시계에 비유했다. "우리도 시계처럼 정직하고, 정확하고, 빈틈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또 시계처럼 너무 정확하게 살면 쉽게 지쳐 버리니까, 가끔은 고장 난 시계처럼 여유도 가지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윤호'인호 두 아들, 가업 승계

이희영 명장의 40여 년 시계수리 외길 인생에 대한 보람도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시계수리하는 모습을 늘 보고 자란 두 아들이 가업을 승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 윤호(41) 씨는 이 명장과 함께 있다가 몇 년 전 달서구 이곡동에 새로운 가게를 냈으며, 작은아들 인호(39) 씨는 2005년 홈플러스 구미점에 시계점을 열었다. 윤호'인호 씨는 아버지를 닮아 나가는 대회마다 금메달은 밥 먹듯 따왔다. 때론 3부자가 함께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기도 했다. 이 명장은 자식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가업을 승계해줘 너무 좋다고 했다. "너무 고맙죠. 첫째는 나를 닮아 손재주가 있어 자연스레 같이 하게 됐고, 대학에서 전자과를 졸업한 둘째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피는 못 속이는지 기능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오는 등 재주도 있고 열의가 있어 2005년 독립시켜줬다"고 했다.

이 명장은 시계수리 인생 45년에 대해 "잘 선택했고, 재미있게 일했다"며 "눈이 침침해 확대경을 쓰고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 명장은 "앞으로도 멈춰 선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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