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시월드에 삽니다

시월드의 외아들과 결혼한 지 17년째다. 남편보다 홀 시어머님과 살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멋모르고 살았다. 아들 둘을 낳았고, 맞벌이를 했고, 집안 대소사를 챙겼다. 육아는 자연스레 어머님의 몫이었다. 나보다 더 아이들을 살갑게 대하는 어머님이 계셔서 든든했다. 휴일이면 어머님과 목욕을 가거나 전통시장이나 시골 장을 찾아다녔다. 고부지간임에도 모녀지간이냐고 물어왔다.

고부 갈등?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살다 보니 서로 투정하듯 토라졌다. 욱신거리는 균열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별것도 아닌 일을 사이에 두고 어머님의 불편한 심기가 느껴질 때면, 나는 좀 더 논리적이고, 날카롭고, 노골적으로 말대답했다. 어머님이 말없이 방문을 걸어 잠그면,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말들의 파편에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아주 천천히 우리는 서먹해졌다. 남편과 아이들은 두 여자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퇴근길에 막걸리를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릇없이 어머님과 맞 잔을 들었다. 어머님도 나도 섭섭한 마음들을 꺼냈다. 애들 뒷바라지와 살림에 어머님은 힘에 겨워하셨다. "우리에게 어머님은 아주 중요해요. 평생, 같이 사셔야죠? 저 좀 살려주세요. 아시다시피 제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아이들이 자라고, 어머님도 조금씩 늙어가고 나도 중년이 되었다. 며느리가 똑똑한 건 좋지만,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건 불편하셨을 게다. 나 역시 어머님이 계셔서 든든했지만, '어른'이라는 자체가 편치만은 않았다. 결혼과 함께 무조건 익숙해져야만 했던 스물다섯의 나는, 6개월 전 울릉도로 오기까지 한 번도 시월드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자연스레 '우리 집'이었고, '우리 어머님'이었다. 젊은 며느리가 새치름하게 모든 세간을 새것으로 바꾸자고 했을 때, 대번에 어머님의 안색이 바뀌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님의 추억과 삶의 애환이 깃든 영역을 건드린 걸까. 어머님의 손때 묻은 세간들은 아무리 닦아도 반짝이지 않았지만, 오래 묵어 숙성된 둔탁한 빛이 돌곤 했다.

살아보니 알겠다. 어머님이 계시는 한, 나는 숙성되지 않을 영원한 새댁이라는 것을. 지독하게 수다를 떨고, 어머님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철부지 며느리. 어머님의 모습에서 등골 서늘한 쓸쓸함이 느껴질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어느새 애증이 생겨버린 관계. 당신의 모습에서 내 노년의 모습이 얼비친다. 묵묵히 며느리살이를 인내하고 있는 어머님의 모습에 설움과 연민이 느껴진다.

나는 17년째 어머니로부터 '시월드'의 가풍을 전수받는 귀한 몸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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