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엔 크고 푹신한 의자
"아픈 사람이 편하게 있어야죠"
환자 말 들으며 연신 맞장구
20년 가까이 봉사활동 지속
특히 새터민 돕기에 관심 커
결혼식 빈자리 채우는 게 기쁨
신경목(55) 대곡제일내과 원장의 진료실에는 크고 편안한 환자용 의자가 있다. 머리와 등받이, 팔걸이에는 푹신한 쿠션이 달려 있고, 등받이 각도도 편안하게 조절된다. 신 원장은 "환자는 아픈 사람이니 내 의자보다 환자 의자가 편해야 한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신 원장은 '들어주기'가 특기다.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맞장구를 친다. 폐렴이 다 나은 노인 환자가 "아직도 숨이찬다"고 걱정하자, 안심할 때까지 청진기를 댔다. "커피를 끊었다"는 고혈압 환자의 자랑에는 "잘했다"고 화답하고, 중국 여행을 간다는 천식 환자는 "추운 지방은 피하라"며 살뜰히 챙겼다.
다소 어색해하던 신 원장이 '봉사'로 화제가 넘어가자 쉴 새 없이 얘기를 쏟아냈다. 자그마치 20년에 걸친 봉사 인생이다. 신 원장은 "기러기 아빠여서 가능했던 일"이라며 "봉사를 하며 내 인생이 밝아졌으니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각종 봉사 활동으로 받은 표창들은 환자 대기실 구석에 조용히 숨겨져 있었다.
◆메르스 의심 환자 방문하자 병원 폐쇄…'기본에 충실'
신 원장이 개원한 건 올해로 꼭 20년째다. 한자리에서 20년을 지내니 가족 같은 환자들도 많다. 어머니뻘인 팔순 환자는 지금도 그를 만나면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한사코 사양해도 병원에 올 때마다 요구르트를 사오는 60대 환자도 있다. 그는 "흰머리가 날릴 때까지 이 자리에서 병원을 지킬 생각"이라고 했다.
동네 내과의원에는 온갖 질환의 환자들이 찾는다. 복통이나 감기,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찾는 환자가 대부분이지만 부인과 질환이나 피부발진, 관절 질환 환자도 일단 내과를 찾는다. 그가 한 달에 서너 번씩 순환기학회나 소화기학회, 초음파학회 등 각종 학회에 발도장을 찍는 이유다. "환자들은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잘 모르면 우선 내과를 찾기 때문에 다양한 질환을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똑똑한 의사가 해야 하는 게 내과죠. 저도 가끔은 모르는 질환을 만날 때도 있으니까요."
그는 '환자의 안전'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겨울철 독감이 유행할 때는 병원을 찾은 모든 환자에게 마스크를 건넨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당시,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방문한 걸 알고 1주일가량 병원을 자진 폐쇄하기도 했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나서 한동안은 환자가 많이 줄기도 했어요. 지금은 환자가 계속 늘어서 오히려 메르스 사태 이전보다 바빠요. 환자들이 저희 병원을 미덥게 봐주신 거죠."
신 원장은 "환자를 억지로 붙들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개원 초기엔 환자를 늘리는 데 급급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마음을 고쳐먹은 지 오래됐다. "의사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환자를 붙잡다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탈이 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을 비웠죠." 신 원장의 표정에 여유가 묻어났다.
◆새터민과 더불어 산 20년 봉사 인생
신 원장은 '봉사하는 의사'로 잘 알려져 있다. 별다른 취미 없이 20년 가까이 봉사에 힘을 쏟고 있는 덕분이다. 개원 초 환자가 없어 운영이 어렵던 시절, 노숙인이나 차상위 계층, 한부모가정 등 소외 계층에게 무료 진료를 제공하는 성심복지의원에서 주말 진료봉사를 하면서 봉사에 발을 디뎠다.
그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은 새터민이다. 13년 전 새터민을 지원하는 사회복지법인과 인연을 맺은 후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달서구에 사는 새터민이 많더라고요. 그분들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북한이주민지원센터와 연결이 됐어요." 신 원장은 새터민의 보금자리가 될 임대아파트를 청소하고, 그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영화를 봤다. 결혼 적령기 새터민들의 혼주가 돼 결혼식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도 신 원장의 큰 기쁨이다. "축의금을 많이 했지 별로 해준 것도 없어요. 결혼한 새터민 딸이 최근에 닭고기 장사를 시작했다며 연락이 왔는데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매출이 떨어져서 애를 먹는대요. 걱정이에요."
지난 2015년 운영위원장을 맡은 북한이주민지원센터는 재정이 어려워 직원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다행히 떠난 직원들이 다시 센터로 돌아와 줬다. "인턴으로 일했던 청년을 채용할 형편이 안 돼서 1년 만에 떠나보냈죠. 그 청년이 3년 뒤에 우리에게 돌아왔어요. 알고 보니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우리를 선택했더군요.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신 원장은 "의사라는 직업을 잘 택한 것 같다"고 했다. 남을 도울 때 의사라는 직업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의 본업이 아프고 약한 사람을 돌보는 일이잖아요. 제가 평소에 하는 일을 병원 밖에서 하면 봉사가 되니 전혀 어려울 게 없죠. 제가 봉사로 칭찬받을 때마다 약한 이를 돕는 일을 업으로 삼은 많은 분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에요."
사진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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