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을 매국노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일본과 '이미 망한 나라'의 값을 흥정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 이익을 챙긴 '작은 매국노'다. 주류 매국노는 대원군과 고종 임금, 명성황후 등 조선의 실권자들이다.
1871년(고종 8)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했다. 1866년 평양 사람들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號)를 불태운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조선과 통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통상을 거부했고, 광성보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미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이었고, 조선군은 전사자 350명, 부상자 20명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이 협상을 거부하자 미군은 물러갔다. 미군이 퇴각하자 흥선대원군은 '능히 서양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다'며,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성벽을 보수했다. '양이와 화친은 매국이요, 망국행위'라고 규정했다.
조선은 대포 몇 방이면 허물어질 돌담(성벽)을 쌓으면서, 상대의 실력을 외면했다. 개항이니 선진 문물이니 하는 사람들을 매국노로 규정했다. 사망자 350대 3이라는 실력 차이는 무시됐다. 그렇게 나라는 망해갔다. 무지한 지도자가 매국노인 이유다.
우리는 '동해'(東海)를 '동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동해'(East Sea)가 아니라 '일본해'(Sea of Japan)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 세계 75개국에서 발간한 353개 지도 중 74.2%는 '일본해'라고 단독 표기하고 있다. 그 외 23.8%는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그 아래 '동해'라고 병기하고 있다. '동해'라고 단독 표기한 지도는 하나도 없다. 나머지 2%는 표기 자체가 없다.
우리가 '동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가장 큰 원인은 그 바다를 '동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장대로라면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나라 동쪽에 있으니 '동해'라는 생각, 내가 최고라는 사고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동해'를 잃게 했다. 외교 협상에서 조금만 양보해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사드 배치 반대, 한'일 위안부 합의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애국자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국제 정세에 무지하거나, 국민의 분노에 기대 환심을 얻으려는 모리배에 불과하다. 그도 아니면 세월의 선처를 기대하며 시간만 보내자는 사람이다.
우리가 '과거사'에 빠져 있는 동안 미국과 일본은 정상이 상호 방문하면서 일본을 '전범국가'에서 '군사적 파트너'로 만들고 자위대 무장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국방력 강화에 돈이 필요하다며, 물가상승률이 2%가 될 때까지 엔화를 찍어낼 수 있도록 미국의 용인을 받았다. 그 결과 달러당 70∼80엔 하던 것이 130엔까지 절하됐고 (어제오늘은 113엔), 국제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한국의 제조업, 특히 조선산업, 자동차산업은 치명타를 입었다.
이 지경이 되어도 우리 인식은 과거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과거사' 말고는 보이는 게 없으니 일본과 외교 협상이라면 일단 '굴욕', '친일'로 규정해버린다. 그래놓고 자신은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급기야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협상에서 배제해도 '소녀상'에만 매달릴 뿐이다. 적극적으로 교섭에 응해 받을 건 받고, 줄 건 줘야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 없다. 일본 문제에 관해 이성적으로 대처하자고 하면 친일파로 몰아버린다. 세계정세를 외면하고 전국에 '척화비'나 세우며 세월을 탕진했던 흥선대원군과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는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많다. 그중 하나가 대중은 당장 듣기 좋은 소리를 원한다는 것이고, 여기에 부합해 막무가내로 소리 지르는 정치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면 정치인은 표를 얻지만 나라는 망한다. 그런 정치인들은 매국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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