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이데올로기의 표현과 전파를 위한 강력한 무기다. 구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나치의 '민족 예술'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체제가 지향하는 가치나 목적을 찬양'고무하는 방식이다. 이는 그런 가치나 목적에 위배되는 '타락한' 미술 작품을 비판하고 모욕하는 방식과 짝을 이룬다. 그런 작품을 한데 모아 국민에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무려 3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아 20세기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1937년 나치의 '퇴폐미술 전시회'다. 히틀러가 좋아한 친나치 화가 아돌프 치글러가 기획한 이 전시회에는 전국에서 압수한 샤갈, 칸딘스키, 막스 에른스트, 오토 딕스, 막스 베크만, 파울 클레 등 저명한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 650점이 전시됐다.
그 목적은 현대 미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국민이 직접 와서 보고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나치는 현대 미술의 추상성과 난해함을 정신질환과 동일시했다) 전시회 개막 연설에서 치글러가 한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독일 민족이여! 와서 스스로 판단하라."
하지만 전시회의 작품 배치는 전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지 않았다. 치글러는 전시 작품들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는 인상을 주입하려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그야말로 무질서하게 배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 작품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어 '무례하게 신을 조롱함' '병든 정신에 비친 자연' '독일에서 검둥이가 퇴폐 미술의 인종적 이상이 되다' 등의 모욕적인 제목을 달았다. 이는 미술은 활용하기에 따라서 자기편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든지 모욕하고 매도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을 소재로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드 마네의 '올랭피아'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이란 그림도 그렇다. 올랭피아는 당시 파리의 유명한 유곽이라고 한다. 그러니 작품 속의 누드 여성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결국 박 대통령을 그런 여성에 빗댄 것이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런 지적에 작가와 이 그림을 옹호하는 측은 예술과 표현의 자유에 시비를 걸지 말라고 하겠지만, 전혀 예술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마네의 그림이 주는 예술의 향기와 감동은 없고, 맹목적 증오와 비하, 재주는 없는데 이름은 얻고 싶은 매명욕(賣名慾)의 벌건 속살만 드러난다. 마네가 봤다면 "내 그림을 이렇게 타락시킬 수 있느냐"며 땅을 칠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