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 꺼지는 '포철 1고로'] 45년간 쇳물 5천만t, 세계 5위 철강대국 이끌었다

1973년 첫 매출액 416억, 車 5천만대·타이타닉호 1천척 만들 수 있는 쇳물 생산량 기록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화입 21시간 만에 첫 출선이 이뤄지는 순간, 일제히 만세를 부르는 박태준 명예회장과 임직원들.(사진 우측 상단) 포스코 제공 포항제철소 1고로 1975년 전경. 포스코 제공. (우측 하단)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화입 21시간 만에 첫 출선이 이뤄지는 순간, 일제히 만세를 부르는 박태준 명예회장과 임직원들.(사진 우측 상단) 포스코 제공 포항제철소 1고로 1975년 전경. 포스코 제공. (우측 하단)

1973년 6월부터 가동된 우리나라 최장수 용광로인 '포항 1고로'가 올 하반기 폐쇄된다. 효율성 등 경제적 이유로 폐쇄가 결정됐지만, 현장은 산업의 역사를 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보존될 전망이다.

폐쇄 시점은 3고로 2차 개수공사가 끝나는 올해 4분기가 될 예정이다. 개수공사는 고로가 수명을 다하면 조업을 중지하고 고로 내부벽돌(내화물)을 교체하는 작업을 말한다.

1천℃가 넘는 고온을 견뎌야 하는 고로의 수명은 평균 15년 안팎. 1고로는 개수공사를 통해 수명을 연장해 왔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연간 130만t의 쇳물을 생산하고 있지만 광양제철소 5고로 용량이 500만t임을 감안했을 때 '종풍'(終風·고로가 수명을 다하고 쇳물 생산을 마치는 과정)이 효율적인 선택이다.

포스코가 수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고로 대형화 작업은 1고로와 같은 노후'소형 고로의 퇴장을 예고하며 '고로의 진화'를 알렸다.

◆영일만 바다에 배수진을 치다

1969년 포항제철소 1고로 건설에 나섰던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당시 사장)은 "조상의 피 값(대일청구권자금을 말함)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는 말로 배수진을 쳤고, 스스로도 술을 끊었다.

그 후 4년이 지난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포항제철소 1고로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출선이 이뤄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로에서 쏟아진 황금색 쇳물을 발견한 한 직원이 "나왔다"고 소리치자, 그 자리에 있던 박 명예회장과 관계자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다. 선진국에서도 황금색이 아닌 물엿같이 걸쭉한 쇳물이 나오는 사례가 있었기에, 당시의 긴장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실패한다면 길게는 1년 넘게 고로를 뜯어내 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경제 여건상 이날의 성패가 제철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했다. 이 때문에 철강인들은 6월 9일을 '철의 날'로 명명(2000년)하고, 첫 출선의 감격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한편 제철소 1고로 건설사업은 1970년 3월 1일 창고설비 착공에서 시작됐다. 정비공장 착공, 시험검정설비, 열연공장, 후판공장이 그해 연이어 착공됐다. 1971~1972년 제선공장, 제강공장, 설비, 철도 등이 들어섰다. 당시 토목공사 259건, 건축공사 149건, 수도배관공사 72건, 전기공사 156건, 계장공사 14건, 축로공사 11건 등 모두 927건을 발주했다. 1973년 6월 고로 화입에 이어 분괴공장, 강편공장 등의 준공으로 103만t 체제의 1기 설비가 마무리됐다. 이후 두 차례 개수를 거쳐 현재 내부용적 1천660㎥ 규모로 성장했다. 1973년 1고로 가동 첫해에는 매출액 416억원, 영업이익 83억원을 달성했다.

◆1고로 퇴장하지만 역사적 가치는 높다

1고로는 1천660㎥(내부 용적)로, 연산 130만t의 쇳물을 생산하는 소형 고로다. 단위 생산성은 높지만 다른 고로들의 생산량(연산 400만~500만t)에 견주어 보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1고로가 우리나라 철강산업을 태동시킨 핵심 설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세계 5위 철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된 설비이면서, 세계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우리의 강한 정신을 보여준 가치의 산물이다.

1고로는 1970년대 한국을 자동차'조선'건설 등의 제조업 강국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됐다. 세계적 철강 공급과잉과 정부의 설비조정 주문 등으로 1고로 폐쇄가 불가피해졌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1고로가 갖는 상징성과 역사성을 감안해 보존하면서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포항제철소가 견학 명소로 각광받으면서 1고로를 관광코스로 포함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3고로 3차 개수의 의미

1고로 종풍은 3고로 3차 개수공사와 궤를 같이한다. 1978년 12월 8일 준공된 3고로는 개수공사를 통해 생산능력은 기존 400만t에서 500만t으로 확대되고 내부 용적도 4천350㎥에서 5천600㎥로 늘어난다. 2월 24일~6월 12일 107일 동안 개수공사가 진행되면 6월 13일 화입이 시작된다.

개수공사는 전체 투자비가 최소 5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여, 지역 건설경기 등 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개수공사 사업비는 개수뿐만 아니라 설비까지 모두 바꾸는 신예화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기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공사인력은 최소 연인원 20만 명에 달할 예정이고, 포항지역 업체에 대한 직발주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된다. 3고로 3차 개수가 마무리되면 포스코는 광양 1고로(6천㎥), 광양 4고로(5천500㎥), 광양 5고로(5천500㎥), 포항 4고로(5천600㎥)와 함께 모두 5개의 초대형 고로를 보유하게 된다.

◆1고로의 기록

1고로는 지난 45년간 약 5천만t의 용선을 생산했다. 이는 5천300여만 대의 자동차와 타이타닉호 크기의 선박 1천 척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지난 1993년 2월 3대기 화입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조업한 1고로는 2014년 7월 30일 휴지(休止)에 들어간 주물선 고로가 보유한 최장수 고로 기록(7천804일)도 갈아치웠다. 고로는 내화물 마모 등 설비 열화로 인해 15년 이상은 수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1고로는 3대기 조업(1993년) 이후 23년 넘는 현재까지도 안정적인 조업을 유지하며 국내 최장수 고로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다. 이는 포스코의 특화된 제선기술과 설비관리 등의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덕분이다.

1고로는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근간이 됐다. 1고로 기술이 축적돼 포항'광양제철소에 10개의 용광로가 지어졌고, 차세대 제선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도 개발됐다. 2008년에는 1고로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월간 출선비(고로 단위부피당 월평균 쇳물 생산량'4천349t) 신기록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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