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 대선후보 없는 불임 정당
2인자 존재 불허로 잠룡 탄생 못 해
얼빠진 후진적 층위에 개혁 발목 잡혀
수구와 경쟁하는 바른정당도 위기
비록 국민 꼴불견으로 전락했지만 새누리당은 여전히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90석의 의석을 거느린 거대 정당에 그 흔한 대선후보 하나 없다. 10년 동안 권좌에서 밀려나 있었던 야당에는 문재인, 이재명, 안희정, 박원순, 김부겸 등 잠룡들이 차고 넘친다. 국민의당만 해도 안철수라는 유력한 후보가 있잖은가. 어쩌다 집권여당이 이무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을까?
사실 새누리당에 잠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김무성이라는 유력한 카드가 있었다. 2015년에 그는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내내 1등의 자리를 유지했다. 그뿐인가? 감동적인 원내대표 연설로 야당 의원들에게까지 박수를 받았던 유승민 원내대표도 있었고, 이들을 남경필, 원희룡 등 새누리당 내 개혁소장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가?
새누리당을 이렇게 불임 정당으로 만든 것은 특정 지역에 깊이 뿌리박힌 박정희 신화다. 위대한 지도자의 딸에게 대를 이어 충성해야 한다는 지역 정서. 그것이 새누리당에서 일어난 친위 쿠데타의 동력이었다. 총선 참패를 불러온 '공천 파동'은 한마디로 새누리당 안에서 일어난 미니 '5'16혁명'이었다. 그 정변의 결과 공당(公黨)이어야 할 집권 여당이 졸지에 박근혜 개인의 사당(私黨)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독재자의 특징은 절대로 '2인자'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제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집권여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를 내친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하긴, 김종필 전 총리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늘 자신을 의심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분위기에서는 당연히 잠룡들이 탄생할 수가 없다. 최고 권력자의 눈치나 슬슬 보는 이들이 어떻게 일국을 이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이번 블랙리스트 파동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이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그 짓을 해도 되는지 머뭇거리는 공무원들에게 윗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생각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 생각과 판단은 우리가 할 테니 시키는 대로 움직여라." 한마디로 생각과 판단은 권력자가 할 테니 국민들은 영혼 없는 좀비가 되라는 얘기다. 이게 '수령은 두뇌요, 인민은 수족'이라는 북조선 정치와 대체 뭐가 다른가?
공안 통치와 공작 정치의 대명사를 비서실장의 자리에 앉히는 시대착오. 그 덕분에 디지털 강국의 거리는 졸지에 1970년대 개발도상국의 풍경으로 되돌아갔다. 주말마다 서울 시민들은 전세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온 1만여 명의 사람들 때문에 70년대 향수를 만끽하는 호사(?)를 누린다. 40년 전에나 보던 어용 데모와 관제 가요를 디지털 스마트 시티의 길거리에서 구경하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대통령은 죄가 없다." "태블릿 PC는 조작됐다." 이런 구호는 인지 부조화 현상으로 보아 그냥 웃어넘기자. 하지만 "군은 일어나라"든지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내란선동의 외침은 농담으로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고약하다. 이런 얼빠진 이들이 새누리당의 유일한 지지 세력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지세가 제법 강해서 대한민국 보수의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최소한의 인적 청산도 없이 버티는 것도 결국 저 얼빠진 이들이 대한민국 보수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리라. 어려운 순간만 버텨내면 결국 떨어져 나간 지지층이 다시 이 핵으로 모여들 것이라는 굳은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바른정당마저 명분의 압도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의식의 가장 후진적 층위에 발목이 잡혀 버린 것. 이것이 보수 위기의 진정한 근원이다.
'박근혜'를 '반기문'으로 갈아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그저 밖에서 걸출한 '인물'을 들여오는 것으로 새누리당이라는 수구 세력과 경쟁하려 한다면, 그나마 바른정당이 보유하고 있는 비루먹은 잠룡들마저 그 큰 '인물'의 그림자에 가려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고사하고 말 것이다. 그 경우 지금 닥친 이 '일시적' 위기는 보수의 '영속적' 위기로 고착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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