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대사다. 송강호가 연쇄살인 용의자였던 박해일을 놓아주면서 한 말이다. 송강호의 표정에선 아련한 연민과 서늘한 체념이 동시에 스쳤다. 유력한 용의자로 몰아세우던 박해일에게 혐의가 없다고 밝혀진 뒤였다. 형사로서 느낀 허탈감과 애먼 용의자에 대한 미안함, 어딘가 있을 진범을 향한 분노 등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이 대사에서 많은 관객이 '밥'이 주는 정서적인 울림에 공감을 나타냈다. 삶의 물질적 조건인 밥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애잔함이자, 또 그런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동질감일 것이다. 여기에 '집'이 더해지면 왠지 '엄마'라는 말이 떠오르고, 이내 가슴이 아려오는 원초적인 그리움이 생긴다.
요즘 유행처럼 집밥이 TV 속으로 들어왔다. '집밥 백선생'은 찌개와 국 등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법을 가르쳐준다. '삼시세끼'는 연예인이 농촌과 어촌에서 직접 식재료를 구한 뒤 집밥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한끼줍쇼'에서는 무작정 아무 집을 찾아가 밥 한 끼를 달라고 한다. 집밥을 만드는 데서 나아가 집밥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마치 어릴 적 친구 집에서 얻어먹던 밥을 생각나게 한다. 한 식구(食口)가 된 것처럼 한 밥상에서 느끼는 유대감을 방송은 전한다.
집밥의 유행이 겨냥하는 건 '1인 가구'의 정서적 결핍이다. '혼밥'(혼자 먹는 식사)이란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외로움의 위로'를 타깃으로 한다.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2016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혼자 여가활동을 하는 경우가 지난해 59.8%로, 2014년 56.8%보다 늘었다.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비율도 같은 기간 32.1%에서 29.7%로 감소했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도 1인 가구 수는 520만 가구로, 이전 조사인 2010년 422만 가구보다 늘었다.
황지우 시인은 '거룩한 식사'란 시에서 혼밥을 이렇게 말했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이맘때면 '거룩한' 집밥이 더욱 간절해진다. 찬바람이 불고, 설 명절이 다가와서다. 직장생활과 학업 등 여러 이유로 흩어진 가족이 모인다. 끼니때 엄마 밥상 앞에 둘러앉는다. 연어처럼 귀향해 집밥으로 돌아온다. '밥이 약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설 고향에서의 집밥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약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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