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계란 색깔론

발상의 전환을 말할 때 인용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콜럼버스는 달걀 밑부분을 조금 깨서 달걀을 세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에피소드의 '저작권'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 그보다 85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의 건축가 부르넬스키가 같은 방법으로 달걀을 세웠다. 콜럼버스는 이를 따라했을 뿐이다.

달걀은 사과와 더불어 신화와 격언'경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그만큼 인류에게 친숙한 식재료인 것이다. 경주 신라 고분에서 1천500년 전 달걀 30개가 출토될 정도로 우리 조상들도 달걀을 즐겼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달걀은 제법 귀한 대접을 받는 식재료였다. 구한말 당시 달걀은 같은 무게의 쇠고기와 비슷한 가격에 거래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달걀의 수는 하루 4천만 개 정도다. 1인당 연간 소비량도 300개나 된다. 값이 싸다 보니 달걀은 원래 용도에서 일탈해 '투척 무기'(?)로도 사용된다. 노른자와 흰자가 터지면서 생겨나는 시각적 폭발 효과가 그만인데다 맞았다고 해서 사람 다치게 할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조류의 알과 마찬가지로 달걀은 단 한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병아리가 되는 부위는 흰자와 노른자가 아니라, 그 경계면에 위치한 배아 부분이다. 흰자, 노른자는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영양소가 된다. 달걀은 0.3㎜ 두께의 탄산칼슘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데 껍질 색은 알을 낳는 닭의 깃털 색에 좌우된다. 누런 닭은 누런 알을, 흰 닭은 흰 알을 낳는다. 심지어 파란 닭이 낳는 파란 알도 있다.

껍질 색에 관계없이 달걀의 맛과 성분은 같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생산'소비되는 달걀의 99%는 갈색이다. 흰색 달걀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못 미치며 그나마 대부분 알 공예에 사용된다. 1980년대까지 흔했던 흰색 달걀이 자취를 감춘 것은 갈색 달걀의 영양가가 더 높을 것이라는 편견과 그에 따른 상술, 국내 농가들의 갈색 닭 선호 때문이다.

조류독감(AI) 여파로 달걀 품귀 현상이 심해지면서 미국산 흰색 달걀들이 속속 국내에 반입되고 있다. 갈색 달걀에 익숙해진 국내 소비자들로서는 흰색 달걀이 생경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러나 달걀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껍질 색이 아니라 사육 환경이다. 호르몬'항생제 처리를 받지 않은 닭이 낳은 알이 가장 좋다. 올해가 붉은 닭의 해라지만, 달걀 먹을 때만큼은 색깔 따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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