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조산으로 힘겨워하는 마리카 씨

몸무게 1kg 셋째, 석달간 인큐베이터 신세

마리카(가명
마리카(가명'필리핀) 씨의 딸이 한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딸은 지난해 12월 초 임신 27주 만에 조산아로 태어나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상태다. 우태욱 기자

마리카(가명'30'필리핀) 씨는 아이가 세상의 빛을 봤을때 한 번도 제대로 안아주지 못했다. 지금껏 낳은 세 아이 모두 그랬다. 첫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둘째와 셋째는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세 아이 모두 너무 일찍 태어난 이른둥이였다. 지난 2014년 6월 출산한 첫째 아이는 임신 25주 만에 태어났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숨이 멎은 아이는 다신 눈을 뜨지 않았다. 마리카 씨는 꼬박 두 달간 눈물만 흘렸다. 남편은 매일 밤 "아기는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마리카 씨를 위로했다. 마리카 씨는 "그땐 나도 같이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1년여 뒤 부부에게 선물처럼 둘째가 왔다. 32주 만에 2.4㎏으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던 둘째는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진 끝에야 마리카 씨의 품에 안겼다. 조산 탓에 더는 아기를 낳지 않으려 했지만 덜컥 셋째를 임신하고 말았다. "임신 사실을 알고는 걱정만 했어요. 죄 없는 아기가 또 고생할 것 같아서…."

◆1㎏으로 태어난 셋째…병원비는 수천만원

지난해 12월 태어난 셋째 역시 조산이었다. 임신 27주 만이었다. 출산 2주 전 조산을 막으려고 자궁경관을 묶는 수술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몸무게가 1㎏이 조금 넘는 딸은 양손 위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딸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집중치료실로 들어갔다. 마리카 씨는 "아기가 살아 있는 것조차 기적 같다"고 했다.

마리카 씨는 딸이 눈뜬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만지지 못해 아쉽게나마 이름을 부르면 딸은 엄마 목소리를 알아들은 듯 움찔거린다. 그럴 때마다 딸을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지만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중치료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딸이 태어났을 당시, 딸의 폐는 완전히 성장하지 못해 자가 호흡이 불가능했다. 딸은 두 달 가까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지만, 지금도 간헐적으로 무호흡증이 나타난다. 이제 겨우 1.8㎏인 딸은 앞으로 한 달은 더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한다.

비싼 병원비는 마리카 씨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남편의 벌이로는 먹고살기 빠듯한 데다 부부 모두 필리핀 출신이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목돈이 필요할 때면 그는 한국에서 만난 필리핀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병원비로 빌린 돈만 1천만원이에요. 그런데 셋째 병원비는 3천만원이 넘게 나올 거래요."

◆팍팍한 살림…아껴도 빚은 제자리걸음

마리카 씨는 "한국에 온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다. 고향에서 살았다면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탓이다. 그는 2008년 강원도에서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자궁질환에 시달리는 친정어머니를 외면하는 남편에게 실망해 1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서울과 영주를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마리카 씨는 "번 돈은 대부분 필리핀으로 보냈다. 어머니의 병이 낫는 모습에 행복했다"고 했다.

지난 2013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대구로 오면서 마리카 씨는 봄날을 꿈꿨다.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고 마리카 씨는 첫째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배 속 아기의 건강을 위해 빠듯한 살림에도 직장까지 그만뒀다.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첫째가 떠나고 마리카 씨는 웃는 연습을 해야 했다. "혼자 있을 때는 별생각이 다 들고 눈물만 나요. 그래도 남들 앞에서 울 순 없으니까요."

매일 12시간씩 비닐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한 달에 160만원 남짓이다. 그마저도 필리핀에 보내고 나면 100만원으로 살아야 한다. 돌이 갓 넘은 둘째의 아기 용품은 죄다 친구들에게 얻은 것이다. 아끼고 아껴도 늘 생활비는 빠듯하고, 빚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아무래도 빚을 갚으려면 둘째를 필리핀에 보내고 저도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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