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6>양복 명장 김태식

"양복은 과학이자 예술" 철탑산업훈장 첫 수상

세계맞춤양복연맹 부회장과 포즈를 취한 김 명장.
'양복은 과학이자 예술'이라고 말하는 김태식 양복 명장.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세계맞춤양복연맹 부회장과 포즈를 취한 김 명장.

"옷을 잘 입는 것도 실력이라네. 옷차림이 누추하면 용기가 없어 보이지. 남자는 슈트를 잘 갖춰 입었을 때 당당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라네…. 이 양복이 자네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양복점 주인 만술이 취업에 실패하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태양에게 직접 지은 양복을 선물하면서 하는 멘트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기성복에 눌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맞춤양복이 최근 들어 되살아나고 있다. 대한민국 양복 명장 김태식(64'베르가모 김태식양복점 대표) 선생은 "기성복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품위와 멋에 있어서는 맞춤양복만 못하다"면서 "몸의 치수를 일일이 재어서 만들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맞춤양복이라면 입은 듯하면서도 입지 않은 듯한 편안함과 품위까지 더해 자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재단사

김 명장이 양복 일을 시작한 것은 13세 때인 1966년 12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야 했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친척이 운영하는 양복점에 견습생으로 들어간 게 50년 양복쟁이 인생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김 명장은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다짐과 타고난 손재주로 남보다 빠르게 일을 배워나갔다. 평균 5∼7년이 걸린다는 견습생 꼬리표를 불과 2년 만에 뗐다. 선배들을 제치고 윗도리를 만드는 상의공(上衣工)이란 대접을 남보다 빨리 받았다고 했다. 김 명장은 "섬세한 바느질을 하려면 손이 부드러워야 할 것 같아서 잠잘 땐 손에 화장품을 듬뿍 바른 후 장갑을 끼고 잤다"고 말했다. 그 결과 입문한 지 10년 만에 전체 공정을 지휘하는 재단사가 됐다. 김 명장은 "당시 1천원 정도였던 양복 상의를 내 손으로 처음 만들고는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1984년 '김태식 테일러'라는 자신의 이름을 단 간판을 내걸고 독립했다. 하지만 돈 버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양복 제작 기술을 개발하고 주름이 생기지 않는 봉제법을 개발했다. 최고가 되겠다는 김 명장의 노력은 계속됐다. 낮엔 작업장에서 일하고 야간열차로 서울로 올라가 당시 최고의 기술자로부터 수년간 기술을 배웠다. 이런 그를 보고 선생은 "너는 천생 양복쟁이다. 평생 양복을 떠나지 마라"고 했다.

그런 노력 덕에 김태식은 2002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2013년에는 맞춤양복 기술 발전 공을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맞춤양복 분야에서 산업훈장을 받은 것은 김 명장이 처음이다. "맞춤양복의 명맥을 이어온 나의 기술에 대해 국가가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김 명장은 "옷은 제2의 피부다. 옷을 잘 입으면 자신감이 생겨 여러 사람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 옷을 잘 챙겨 입어야 하는 일도 잘되고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 나의 50년 철학이다"고 했다.

◆"양복은 과학이자 예술"

김 명장은 지금도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는 등 노력하는 기술인이다. "자만심을 갖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출전한다"고 했다.

2005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주문양복연맹 회원들을 상대로 기술을 소개했고, 2006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열린 아시아마스터스재단대회에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7월 태국 우본 랏차타니에서 열린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국제재단경연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130년 전통의 세계적 양복 패션저널인 독일 룬트샤우지에 아시아인 최초로 양복제도를 발표해 양복의 본고장인 유럽에 한국 양복 기술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는 맞춤양복의 정확한 재단을 바탕으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체계적인 공정 개선법도 개발해 보급했다.

그는 '양복은 과학이자 예술'이라고 했다. "보기 좋아야 하고, 편하고,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100명이면 100명 모두 각각 다른 체형인 사람들에게 딱 맞는 양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인체공학을 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김 명장은 이어 "옷은 시대에 맞는 옷이 있고 따라서 트렌드가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책이나 잡지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유럽에 자주 간다. "요즘 맞춤양복은 전보다 부드럽고 가볍고 경량화되고 있다. 양복의 본고장은 유럽이지만 우리는 그곳의 유행을 따르되 우리 체형에 맞는 양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장은 또한 "양복쟁이는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저 잘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심미안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양복을 배우는 이들을 위해 현장의 노하우를 살려 쉽고 체계적인 교재도 만들 계획이다.

◆성공보다는 나눔 실천

김 명장은 50년 넘게 갈고닦은 자신의 양복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가르쳐 주는 재능기부에도 열심이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익힌 양복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명장'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 명장은 대구교도소 재소자 기술교육에 오랜 기간 헌신했다. 재소자들에게 원단을 고르는 요령부터 재봉 기술 등을 꼼꼼히 가르쳤다. 김 명장으로부터 기술을 배운 재소자 중 상당수는 양복 산업기사, 양복 기능사 자격을 취득해 당당히 사회에 복귀해 새 삶을 살고 있다.

후진 양성에도 열심이다. 한국맞춤양복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을 돌며 다년간 기술강습회 강의는 물론 중소기업청 주최 소상공인 경영개선교육에도 참여, 양복업계 종사자들의 기술 향상에 힘쓰고 있다.

김 명장은 "양복 기술 덕분에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 이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계속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옷 잘 입는 법

김 명장은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얼굴을 보고, 그다음은 입고 있는 옷을 본다. 옷매무새를 자세히 보면 공무원인지, 세일즈맨인지, 사업가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사람의 인품도 옷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김 명장은 "자기 몸에 맞춘 격식 있는 옷이 좋은 옷"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옷을 입기 위해서는 자신의 체형을 먼저 알아야 하고, 체형에 따라 디자인과 색상을 정해야 몸에 제대로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은 많은 사람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닌다고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웃도어를 입고 다닌단다. "세일즈맨이 아웃도어나 캐주얼을 입으면 비즈니스에서 신뢰성이 떨어지듯 양복을 입어야 할 때는 반드시 양복을 입어야 한다"면서 "정장을 입으면 마음가짐도 반듯해지고, 말도 신중하게 된다"고 했다.

김 명장은 "국내외적으로 맞춤양복이 새롭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맞춤양복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그러면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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