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다시 한 번 身土不二!

내 체질에 가장 잘 맞는 것은 바로 우리 땅의 식재료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조선 명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 '약식동원론'(藥食同源論)에서 유래한 말이다.

1986년부터 진행되고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는 각국의 보호무역 추세를 경계하고 세계무역자유화 실현을 위한 다자간 무역교섭이다. 하지만 자생력이 약하고 받아들일 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은 농업 약소국들에 UR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농민단체, 민간 등 농업계 전반이 그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이때 우리 농업 지키기 운동으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 신토불이 운동이다. 농협을 중심으로 신토불이 판매장이 마련되고, TV, 라디오, 신문 등 각종 미디어 홍보가 쏟아져 나왔다. 가수 배일호의 노래 '신토불이'가 공전의 히트곡으로 남녀노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당시에는 신토불이를 모르면 시쳇말로 간첩이었다.

이처럼 UR협상에 맞설 대안으로 전 국가적으로 전개된 신토불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다.

도입 초기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아류라는 일부 폄훼도 있었다. 하지만 신토불이 운동은 단순히 국내산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생산자인 농업인들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 더욱 매진하고, 소비자는 안전 먹거리를 통해 건강권을 보장받음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가자는 인간사랑, 자연사랑의 철학이 내포된 정신운동이다. 글로벌 무역질서에 반한 자국 우선 보호무역 기조의 경제운동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America First'로 대변되는 그의 경제정책 표방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철회, 한미 FTA 재협상 논의 등 우리 경제도 그 소나기를 당장은 피하긴 어려울 듯하다.

중국, EU 등 세계 경제 침체의 신호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만큼 짙어지고 있다. 국경 없는 무역 전쟁의 파고는 생존과 도태를 넘나들고 있다. 농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강대국들은 약소 수입국들에 한층 높은 수준의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함과 동시에 자국 내 농업 보호장치는 더 강화할 것이다.

필자가 '다시 한 번 신토불이'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UR협상, 쌀 협상 등 그동안 많은 희생을 이겨낸 한국 농업의 또 다른 버팀목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선 글로벌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물밀듯이 들어오지만 생산환경과 과정, 유통경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수입 농산물에 대하여 소비자 주권을 보장하고, 안전한 식탁을 제공한다. 이를 통한 국내산 농산물 소비 확대와 수급가격 안정, 농가의 경영안정 기여는 기본 전제다.

아울러 IT, BT, CT 등 과학기술과 기술농업의 우위를 바탕으로 '양과 가격'에서 '질' '안전, 건강기능성'이라는 화두로 옮겨가고 있는 세계 식품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내적 역량을 키워가는 데도 신토불이 철학은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다시 전 국가적으로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신토불이의 정신을 되짚어 보고, 함께 고민할 시기임을 밝히고 싶다.

우리 조상의 지혜를 모태로 출발한 신토불이 철학이 유럽의 슬로푸드, 북미의 로컬푸드,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의 정신가치보다 상위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싶음은 필자 개인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 다시 한 번 신토불이'를 가슴 깊이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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