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동료들도 인정한 좋은 의사"
추천한 지인들 한결같이 엄지 척
원치 않던 의사의 길 한때는 고민
환자 치유 지켜보다 보람도 커져
강박 수준 성실한 삶 살짝 후회도
"김천서 받은 사랑, 꼭 환원해야죠"
의사들 사이에서는 좋은 의사는 자격증이 3개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국가가 주는 의사면허증과 환자가 주는 자격증, 의사 동료들이 주는 자격증 등이다. 이중 가장 따기 쉬운 건 국가가 주는 자격증이다. 국가고시에만 합격하면 된다. 다음은 환자들이 주는 자격증이다. 그러나 환자가 많이 찾는 의사가 꼭 뛰어난 의사는 아니다. 가장 어려운 자격증이 동료들이 주는 자격증이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의료계에서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배창표(53) 김천 현대정형외과 원장을 추천한 이들은 "그가 동료들이 주는 자격증이 있다"고 했다.
그의 진료실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진료실보다 정돈돼 있었다. 책은 크기별로 낡은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었고, 각종 표창장과 감사패는 보기 좋게 진열돼 있었다. 배 원장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마우스 외에는 단 한 장의 종이나 책도 없이 말끔했다. 배 원장은 "제 철학이 '소박, 단순'입니다. 뭘 사고 꾸미는 걸 정말 싫어하고요. 집에 들어가면 지갑과 휴대전화 놓는 위치가 딱 정해져 있어요."
◆내가 내세울 장점은 오직 '성실'
배 원장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어젯밤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그가 꺼내 든 건 메모지 4장. 그 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얘기, 성장 과정, 약력 등이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성실'인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12년 동안 개근상을 받았어요. 중학교 시절에는 20리 길(약 8㎞)을 매일 걸어서 통학했고, 의과대 6년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수업에 빠지거나 결석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한번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가는 편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전교생 500명 중에 70등으로 입학해 졸업할 때는 수석으로 졸업한 것도 특유의 성실함 덕분이다. 7년 전, 김천에서 대구로 이사 간 그는 매일 오전 6시면 수성네거리에서 동대구역까지 걸어가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진료는 매일 오전 8시면 시작된다. 휴대전화를 처음 장만한 것도 7년 전이었고, 골동품이 된 슬라이드폰을 여전히 쓴다. 그의 학창 시절 꿈은 항공공학자였다. 서울대 공과대를 지원하려 했지만, 외아들이 멀리 떠나길 원치않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과대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서너 평 진료실 안에 온종일 갇혀 있는 게 답답하고 우울했는데요. 지내면서 지식을 쌓고 환자가 치유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정말 의사 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김천에 터를 잡은 건 지난 1997년. 은사의 소개로 김천의료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에 김천에서 수술할 수 있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3년간 수술에 매달렸다. 한 달에 수술을 80건씩 할 정도였다.
열정적으로 수술하던 그는 우연한 일을 계기로 메스를 내려놓았다. 마미증후군을 앓던 20대 환자를 수술한 이후였다. 마미증후군은 허리척추뼈 아래 신경근 다발이 압박을 받는 질환이다. "수술 후에 통증이나 걷는 건 좋아졌는데 배뇨 기능과 성 기능이 마비됐어요.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환자의 어머니는 매주 그를 찾아와 "살려달라"며 울었다. 그 길로 그는 수술을 그만두고 개원을 했다. "도저히 더 이상 수술을 못하겠더군요. 그 이후로 환자가 훌륭한 의사에게 최적의 치료를 받게 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느꼈습니다."
◆자연치유-수술 개입 교통정리 역할 초점
배 원장이 노자의 사상을 정리한 '노자강의'라는 책을 펼쳤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본 내용이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입니다. 이건 제 진료 방침과도 연결됩니다. 몸이 자연치유될 수 있는 질병, 즉 '무위'가 필요한 질환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조작이 필요한 '유위'가 필요한 질환인지 구분하는 겁니다." 가령 디스크질환 환자가 갑자기 허리를 삐끗하면 3주 정도 지나면 자연히 치유가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신 치유가 잘될 수 있도록 물리치료를 하고 약을 처방한다.
"요즘 유행하는 DNA 주사나 프롤로세라피도 퇴행성 손상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퇴행성 손상에 학문적으로 검증된 건 체외충격파 치료와 스트레칭 치료죠. 환자가 잘 따라오면 6주에서 3개월이면 90%가 저절로 낫습니다."
그는 환자들의 증상을 최대한 단순화시킨다. 아픈 부위와 통증을 느낀 기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해 관절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는지, 단순한 통증인지를 확인한다. 수술이 필요한 질환이라면 잘하는 병원으로 보내고, 자연 치유될 수 있는 질환이라면 치료와 함께 자세와 생활습관 교정, 운동 등을 병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1차 의료는 의료 전달체계의 최첨병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정확하게 교통정리를 하는 거죠. 그러면 환자에게 가는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대신 그는 끊임없이 의료 분야의 최신 지견이나 경향을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먼저 잘 알고 환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요즘 들어 성실하게만 살았던 삶을 조금은 후회 중이다. 세 아이를 모두 명문대 의과대와 치의과대에 진학시키고 난 뒤 찾아온 허탈감인듯싶었다. "지금까지 너무 강박관념을 갖고 성실하게 산 것 같아요. 봄이 되면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발로 걸어보고 싶어요. 또 김천으로 다시 이사를 와서 지역 사회에 제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줄지 고민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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