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1930년대 대공황을 최악의 경제 위기로 꼽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제 위기가 19세기 후반 미국을 괴롭혔다. 남북전쟁 이후 시작된 디플레이션이다. 1870년대 농산물 공급이 급증하자 물가가 크게 떨어졌다. 1873년부터 1896년까지 50% 하락했다. 철도 건설 붐으로 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1882년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까지 만드는 등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렸다.
금본위제로의 회귀도 통화 불안정을 촉발했다. 중앙은행 역할을 맡은 재무부와 의회가 내놓은 정책은 악수를 거듭했다. 수입 대금으로 금이 유럽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금 부족에 시달렸다. 은행'철도회사가 줄도산하는 등 후유증은 심각했다.
이런 미국을 위기에서 건져낸 것은 '자연'이었다. 유럽과 남미의 심각한 밀 흉작으로 미국 농산물 수출이 급증했다. 알래스카에서는 금광까지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통화량이 늘어나고 경기가 서서히 살아났다. 근 30년에 가까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난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그림자가 최근 트럼프 체제에서도 엿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연일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고 있다. 반(反)이민 행정명령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무역 장벽도 모자라 멕시코 국경에 3천㎞가 넘는 장벽까지 세우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논란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몇 년째 이어진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출은 쪼그라들었고 청년백수 등 실직자가 서너 집 건너 한 집꼴로 지천이다. 정국 혼란에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몰고 온 생필품 가격 급등까지 마음 편한 구석이 없다. 오죽하면 "좀 먹고살자"는 소리가 터져 나올까.
설 연휴 부산의 한 마트에서 1천100원짜리 막걸리 한 병을 훔친 20대 청년 실직자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다. 이틀간 굶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속담에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고 했는데 막걸리가 대수였겠나.
요즘 서민들은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고 꽁꽁 싸매기에 바쁘다. 없어서 못쓰고, 있어도 조막손이 될 만큼 미래가 불안한 때문이다. 소비와 생산, 고용의 연결고리가 거의 해체 직전이다. 고용절벽, 인구절벽에 이어 이제는 '소비 증발'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자연마저 도와주지 않으니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할지 참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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