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콤플렉스가 몇 개씩은 있을 터인데 나는 욕을 적시적소(適時適所)에 하지 못하는 것이 원통할 때가 있다. 전달력 결핍이고 순발력 부족이다. 욕은 길게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이 한마디로 상대를 제압하는 언어의 경제성과 폭발력을 지녔다. 아무리 평소 욕하기를 거부하는 자도 숨이 막히도록 뻔뻔한 사람을 보거나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도덕한 경우,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범죄를 접하면 무의식적으로 욕 몇 마디 내뱉는 것이 자연스럽다.
욕이나 욕을 닮은 표현은 상황에 따라 의미와 목적이 다르다. 상대나 상황을 비난하고 원망할 때, 상대를 모욕하고 도발하려고 할 때 욕은 보호색이나 공격용으로 유용하다.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거나 들키기 싫은 감정을 감추어야 할 때, 때때로 감탄할 때, 친밀감을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욕이 욕다운 효과를 내려면 말투와 몸의 자세, 표정과 음색, 얼굴 각도, 시선 처리 등이 목적에 맞도록 절묘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무엇보다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욕을 선별하려면 머리 회전이 빨라야 한다. 본능에 맡겨야 할 수도 있겠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욕에 순기능적 측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욕은 어둠의 산물이다. 일상에서 욕을 권장하는 사례는 없다. 욕은 대개 질병이나 성기 혹은 성행위에 빗댄 것이 많아서 듣거나 직접 쓰기에 민망하다. 더구나 공개적 욕은 대부분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고 당혹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예외는 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욕에 부여한 진중한 임무일 것이다. 공유된 카타르시스.
희미하게 들려온 '염병하네!'라는 이 시대 이 상황을 가장 뜨끔하게 진단하고 가장 간명하게 요약하고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속을 후련하게 만든 촌철살인이었다. 같은 말도 심지어 욕마저도 누가 어느 상황을 빗대어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여운이 달라진다. 기자들의 취재 전쟁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할 뻔했던 그 목소리는 그이가 살아온 삶의 자리를 말해준다. 그전에는 아무도 그이의 존재에 관심 두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도 그이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욕은 분노한 소시민에게만 허락된 입장 표명이자 정견발표였다.
그래서 달라진 게 뭐냐고? 없다. 무소불위를 누리던 그들은 아직 방패를 두른 듯하고 그 욕 한마디에 그것이 뚫릴 리 만무하다. 그 소리가 귓가에 닿기나 했으려나. 여전히 그들은 버티고 발뺌하고 도리어 억울하다 한다. 그러나 희망컨대 그 욕 덕분에 촛불의 주체들이 조금 더 신선해진 상태로, 조금 더 밝아진 눈으로 이 혹한을 견딜 수 있으면 한다.
사족. 남의 나라 대통령을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이보다 더한 한 방이 곧 터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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