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투병 중인 한철영(52) 씨는 "나도 쉰이 넘었으니 돌아가신 삼촌들만큼 살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간질환은 가족력이었다. 한 씨의 삼촌과 외삼촌 모두 간질환으로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든 지 5년이 지난 한 씨는 이제 병실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다. 한 씨가 몸져누운 뒤 생계를 떠맡은 아내는 늦은 저녁 퇴근 후에야 한 씨를 찾는다. 한 씨는 "네 자녀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병문안도 만류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홀로 밥을 먹고 치료를 받으며 꿋꿋하게 버틴다.
이제 한 씨에게 남은 방법은 간 이식뿐이다. 한 씨는 행여나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간 이식을 받지 않겠다"고 돌아누웠다. 하지만 중학생인 막내가 한 씨의 서늘한 손을 꼭 붙잡았다. 고등학생인 셋째는 "자신이 간 이식을 하겠다"며 나섰고, 올해 취업한 첫째와 대학생인 둘째 아이도 "이제 우리도 병원비를 벌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설득했다. 한 씨는 밝게 웃으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포기 대신 희망을 택했다.
◆가족력에 과로로 간암 퍼져…큰딸이 간 이식 자청
젊은 시절 한 씨는 술을 즐겼다. 사람을 좋아했고 술자리를 즐겼던 탓이었다. 한 씨는 "건강만 믿고 간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술을 마셨으니 모두가 내 탓"이라고 했다. 40대 초반에 받은 종합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이 발견된 그는 술을 끊고 운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간 상태는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가족력이 무서운 거죠.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들과 부모님을 부양하느라 무리하게 일을 했어요."
2012년 5월 한 씨는 직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 피를 토했다. 이틀을 쉬었지만 혈변을 봤고, 대학병원에서 간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는 이미 간 전체에 퍼져 있었다. 암이 넓게 번진 터라 절제 수술이 어려워 방사선치료와 고주파열치료, 색전술까지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한 씨가 간암으로 투병한 지 2년 만에 한 씨의 어머니마저 간암으로 병석에 누웠다. 지난해 여름부터 한 씨의 배에는 복수가 차올랐다. 간 기능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다. 보다 못해 혈액형이 맞는 첫째 딸이 간 이식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한 씨는 딸아이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돈 벌어 병원비 보태겠다"는 맏딸 얘기에 뭉클
"네 아이를 키우기가 만만치 않더군요. 엄마의 손길이 없으면 도저히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서 생계는 제가 혼자 책임졌어요." 그는 네 명의 아이를 돌보려고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따로 수입이 없는 부모님을 돌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의 보금자리는 10년 전에 1억원을 주고 구입한 낡은 아파트다. 그마저도 수중에 2천만원밖에 없어 나머지는 금융권 대출과 동생에게 빌린 돈으로 메웠다. 한 씨는 맞교대를 하는 공장에서 주로 일을 했다. 근무시간이 길어 상대적으로 수입이 나았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했고, 휴일이라곤 한 달에 두어 차례가 전부였다.
간암 진단을 받고도 한 씨는 일손을 놓지 않았다. 그와 어머니의 병원비로 짊어진 수천만원의 빚을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삼척에 사는 친구의 일을 도와주다 병세가 악화돼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어린이집 주방에서 조리하는 아내의 월급은 한 달 150만원 남짓. 여기에 기초생활수급비 100만원을 보태도 여덟 식구의 생활비로는 빠듯하다. 네 아이는 부모에게 용돈을 달라 손 한 번 내민 적이 없다. 이제 막 취업을 한 첫째는 돈을 벌어 한 씨의 병원비에 보탤 생각부터 한다. "적은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 갚기도 버거울 텐데…. 첫째가 기특하면서도 참 애처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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